설교 본문

[시편 37: 19]

19.그들은 환난 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며 기근의 날에도 풍족할 것이나

기근의 때에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

우리는 지금 매우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막내를 데리고 나오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구나.” 저도 제 학창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휴대폰도 없었고, 컴퓨터도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지요. 막내 아이가 요즘 쓰는 컴퓨터는 화면도 크고 성능도 뛰어나지만, 제가 처음 사용했던 컴퓨터는 조그만 모니터에 단순한 화면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말도 했습니다. “아빠는 그 시절 분식집에서 라면을 300원에 사 먹었단다.” 그리고 막내 아이에게 물었죠. “너는 아빠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그때쯤이면 자동차 대신 하늘을 나는 차를 타고 다니지 않을까? 운전도 필요 없이 공중에 둥둥 떠다니거나, 개인용 비행기를 몰고 다니는 그런 시대가 오지 않을까? 그때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과거에 비하면 정말 풍요로운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은 점점 더 편리해졌고, 특히 우리나라처럼 먹을 것이 풍족한 나라도 드뭅니다. 심지어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음식의 양도 엄청나다고 하지요.

실제로 탈북자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놀라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풍요입니다. 이렇게 다양하고 좋은 음식을 누구나 쉽게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잘 먹고, 잘 쓰고, 잘 사는’ 시대를 누리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세계적인 정세를 보면 여러 가지로 우려되고 염려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도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지난 한 주간 벌어진 일들을 기억하실 겁니다. 언뜻 보기엔 단순한 충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국제 정세의 흐름 속에서 매우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들이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의 이란은 페르시아 왕조 시절, 이스라엘의 독립을 도운 적도 있을 만큼 우호적인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그 왕조가 무너지고 현재의 극단적 이슬람 체제를 이끄는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집권한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35년 넘게 정권을 유지하면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반군 등 여러 무장 단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이들의 활동은 이스라엘을 직접 겨냥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이란은 핵 개발을 지속해 왔고, 이제는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과의 핵 협상도 진행되고 있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그 전에 선제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단지 중동 지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세계 질서가 마치 과거 냉전 시대처럼 다시 양분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다툼,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대립이 다시금 뚜렷해지고 있죠.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 즉 새로운 실크로드를 복원하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으며, 그 핵심 루트 중 하나가 바로 이란입니다. 그래서 중국은 이란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복잡한 얽힘 속에서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충돌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라, 미국과 중국, 러시아, 그리고 그에 연계된 북한과 대한민국, 나아가 전 세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민감한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다 세계 3차 대전이 터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누군가 한쪽에서 도발을 한다면, 이에 협력하거나 반응하는 국가들이 줄줄이 개입하게 되어, 전면적인 충돌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근 행동은 단순한 군사 공격 차원이 아니라, 자국의 존립을 건 결정이었으며, 이는 국제 정세 전반과 깊이 얽혀 있는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이처럼 번영의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역사에서 보았던 수많은 전쟁과 갈등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땅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잃고, 굶주림과 고통을 겪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전쟁을 직접 겪은 나라입니다.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부모님 세대는 모두 한국전쟁을 몸소 겪은 세대입니다. 그 전쟁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고 번영을 누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을 보면 어떻습니까?

‘이런 시대에 무슨 전쟁이냐’, ‘세계는 하나다’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국가 간 무역 전쟁을 넘어서 실제로 미사일이 오가는 전쟁의 위기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우리나라 경제에도 직접적으로 나타나고 있죠.

요즘 자영업자들, 소상공인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보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정말 힘들다, 어렵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도 잘되고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다수는 경기 침체의 어려움을 몸소 겪고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소비는 줄어들고, 그로 인해 자영업자들은 물건을 팔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부동산 시장, 그중에서도 건설 경기는 지금 ‘바닥’이라고 불릴 정도로 악화됐습니다. 올해 건축 경기 지표만 보더라도 벌써 마이너스 21%를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수 중심의 건설 경기가 이렇게 침체된 것은, 전체 경제 전반에 매우 심각한 신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정부는 약 1,300조 원 규모의 국가 부채를 감수하면서 1인당 약 25만 원의 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돈을 받는 입장에서는 당장 도움이 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깊은 우려가 듭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50%를 넘어섰고, 이는 IMF 사태 때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 당시에도 국가 부채는 급증했고 외환 보유고가 바닥났을 때 외환 위기가 닥쳤죠.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곧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이고, 이는 더 빠른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또다시 빚을 내서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달콤할지 모르지만, 결국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물가 상승이라는 후폭풍을 가져오게 됩니다. 경제의 기본 원리입니다. 오늘은 25만 원이지만, 내일은 그것으로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죠.

이처럼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제가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정책과 결정들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짊어진 국가 부채는 결국 후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지금의 흐름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때때로 경제적인 기근뿐만 아니라 삶의 여러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기근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 역시 그러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원리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 새로운 피조물은 하늘에 속한 자들이며,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아브라함의 복을 상속받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아브라함의 상속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기근의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부족함과 결핍 속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에베소서 1장 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성경은 이어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곧,
우리가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의 공동 상속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택하시고,
그분의 특별한 은혜 가운데 살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근의 때를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의 실제적인 사례들을 함께 나누어 보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땅에 도착하자 어떤 일이 벌어졌죠?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기근이라는 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땅이 메말라버리고, 마실 물도, 먹을 양식도 없는 극심한 결핍의 시간이었죠.
오늘날로 말하자면, 경제적 기근, 삶의 기반이 흔들리는 상황과도 같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어떤 선택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땅”을 약속하셨지만, 그는 기근을 피해서 남쪽으로, 계속해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그 땅을 축복의 땅으로 주셨다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눈앞의 현실을 보고 두려움에 빠져 그 자리를 피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집트에 도착했을 때, 아브라함은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아내 사라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혹시 자신이 죽임을 당할까 봐
그녀에게 “당신은 내 누이라고 해달라”고 말합니다.
결국 그는 생존을 위해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그녀를 왕궁에 들여보내는 선택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가 보기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결정이지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도, 이렇게 인간적인 두려움과 실수로 인해 잘못된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보호하셨고,
오히려 그 땅에서 더 큰 부요함을 주셔서 그가 더욱 풍족해져 돌아오게 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믿음의 자녀들에게는 때로 실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가운데서 보호하시고, 함께하시며, 회복시키시고,
더 풍성하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아브라함보다 더 큰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왜입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창조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녀입니다.
이보다 더 특별한 신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세상의 부모들도 자녀를 보호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독생자 예수님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외면하시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아브라함의 이야기처럼,
우리 역시 기근의 때에 실수할 수 있고,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 회복시키시며,
더 큰 은혜로 인도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아버지 아브라함 때처럼 기근의 때를 맞이하게 됩니다.

함께 창세기 26장 1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든지라.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사람의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흉년이 있었고, 이삭의 시대에도 또다시 흉년이 들었습니다.
기근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현실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없고, 농사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은 기근을 피하여 더 나은 땅을 찾아 떠나곤 했습니다.
이삭 역시 자연스럽게 애굽 쪽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6장 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시며, 지금 머물고 있는 그 땅에 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기근이 있는 땅, 상식적으로는 떠나야 할 그곳에 하나님은 머물라고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눈앞에 기근이 보이고, 경제적 어려움이 심각한 상황 속에서 머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여러분은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창세기 26장 12~13절 말씀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더라.”

기근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이 다 떠나고 싶어하는 그 땅에서, 하나님은 백 배의 수확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니, 이삭은 점점 강성해졌고, 마침내는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삭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이 “당신은 너무 강해졌으니 우리를 떠나달라”고 말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은 자였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말씀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의 상속자라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아브라함의 복을 함께 유업으로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삭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기근의 때, 흉년의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러 순종할 때,
하나님은 그 땅에서 백 배의 수확을 얻게 하시고, 마침내는 거부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생의 기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제적 위기, 건강의 문제, 관계의 어려움, 영적 침체…
그럴 때 우리는 자꾸 그 상황을 피하고 싶고, 더 나은 환경으로 옮기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어디에 머물라고 하시는가입니다.

순종의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 땅에서도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은혜로 채워주십니다.
이삭처럼, 기근의 때에 형통하는 삶,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사는 자녀들의 삶인 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받은 자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며, 존귀한 자녀로 거듭난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함께 받을 자, 약속으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근의 때에 오히려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 사례는 요셉입니다.
요셉 역시 기근의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애굽의 총리로서 그 땅과 민족을 살린 사람입니다.

여러분, 요셉의 인생은 너무도 잘 아시죠.
형제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꿈 해석의 은사로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보여주신 계시가 무엇이었습니까?
7년의 풍년 후 7년의 흉년, 즉 기근이 닥칠 것을 미리 알게 하셨습니다.
요셉은 이 말씀에 따라 철저히 준비했고,
결국 그 기근의 때에 애굽은 온 세상의 양식을 공급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근의 때에 누가 찾아오죠?
바로 요셉의 아버지 야곱과 형제들입니다.
그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왔고,
요셉 덕분에 가장 좋은 땅에서 정착하여 풍성한 삶을 살게 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때 형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과거 자신들이 요셉을 미워해 그를 팔아넘긴 죄가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님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생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과 인생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단지 요셉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고 살리시기 위한 뜻이었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의 눈앞 현실이 어렵고 기근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의 삶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기근의 때에도 당신의 백성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선택받은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늘의 계획,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걱정하고 염려하기보다는 기근의 때일수록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십시오.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는 단순히 이 땅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팔았을 때,
그 속에서도 하나님은 놀라운 회복과 인도, 그리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의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이해되지 않아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섭리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네 번째로 살펴볼 인물은 바로 ‘룻’입니다.

여러분, 룻은 누구입니까?
잘 아시듯이, 베들레헴에는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기근이 찾아왔습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엘리멜렉은 가족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모압에서 그들은 두 며느리를 맞이하게 되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현지 여인과 결혼하는데, 바로 그 며느리 중 하나가 룻입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첫째 며느리는 오르바였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났고,
그 후 두 아들마저도 죽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결국, 남은 건 시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뿐이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소식을 듣습니다.
고향 베들레헴에 다시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이었죠.
그래서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 고향으로 돌아가련다.
너희는 너희의 집으로, 친정으로 돌아가거라.”

그 말에 오르바는 눈물 속에 작별을 고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룻은 달랐습니다.

룻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어머니를 떠나 돌아가라 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룻의 신실한 믿음과 겸손한 태도는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들은 결혼하게 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룻이 바로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게 된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기근으로 시작된 고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했던 상황에서
하나님은 룻을 통해 새로운 회복과 하나님의 위대한 구속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 세상적으로 보았을 때 룻의 가정은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잘 살아보겠다고 떠났지만 남편은 죽고, 두 아들까지 잃었으며,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고난의 배후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룻의 신실한 믿음,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충성은
그녀로 하여금 인류 구원의 계보에 이름을 올리는 위대한 자리에 이르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판단하며 낙심합니다.
환경이 어렵고, 조건이 부족하며, 상황이 실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룻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는 그 모든 것 위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현실을 보며 낙심하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의 흐름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습니다.
기근의 때에도, 고난의 때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이 믿음을 가슴에 새기며,
현재의 자리에서 낙심이 아닌 감사와 순종으로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근 속에서도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회복과 구원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또한 성경에는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기근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시냇가에 머물며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지냈지만, 기근이 심해지자 그 시냇물도 말라버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명령하십니다.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에게 내가 너를 먹이게 할 것이다.”
그렇게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향합니다.

그곳에 도착하니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엘리야는 그녀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가진 것으로 나를 위해 떡을 좀 만들어 주십시오.”

그때 과부가 뭐라고 대답하죠?
열왕기상 17장 1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건대,
나는 떡이 없습니다.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입니다.
이제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을 작정입니다.”

이 과부는 지금 말 그대로 삶의 끝자락에 서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떨어졌고, 마지막 남은 가루와 기름으로 빵 하나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믿기 힘든 말을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 말대로 하십시오.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해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 가져오십시오.
그 후에 당신과 당신의 아들을 위해 만드십시오.
그러면 여호와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비가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열왕기상 17:13–14 요약)

말이 안 되는 말이죠.
가루 한 움큼, 기름 조금으로 만든 빵은 한 사람 몫도 안 되는 분량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먼저 그것으로 자신을 위해 만들라고 요청합니다.
이는 믿음의 결단을 요구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과부는 고민했겠지요.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 말씀을 따릅니다.
마지막 남은 재료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드립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왕상 17:14)

그 약속 그대로,
비가 내릴 때까지 그 통의 가루는 마르지 않았고,
병의 기름도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왜 이 과부는 이 놀라운 은혜를 경험했을까요?
그녀가 가진 것은 마지막 한 끼,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결단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근의 때에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공급은 종종 믿음의 순종을 통해 흐릅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마지막 남은 것, 내게 드려라.”
우리는 말합니다.
“주님, 이거 먹고 죽을 건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비를 내릴 때까지, 너의 통에 가루가 마르지 않을 것이다.”
“너의 병에 기름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은혜입니다.
믿음 없이는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기근의 때를 지나고 계십니까?
재정적으로 어렵고, 삶이 마르고, 마음이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그때 주님은 우리의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있는 것 하나, 내게 드려보아라.
그러면 내가 마르지 않는 은혜로 채워주리라.”

오늘도 하나님은 심을 씨앗을 주시고,
그 씨앗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심지 않으면 거둘 수 없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마지막 남은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기근의 때, 누구보다도 풍성한 은혜를 누린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으로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초자연적 공급하심을 기대하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공급 속에 있습니다.
나는 마르지 않는 은혜를 누릴 자입니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실제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또 한 명, 여러분이 잘 아시는 ‘수넴 여인’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십시오.
그녀는 남편을 잃고 난 후, 감당할 수 없는 빚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두 아들이 종으로 팔려갈 위기에 처하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녀에게 말합니다.
“빈 그릇을 많이 빌려오십시오. 그리고 너와 네 아들들은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그 빈 그릇들에 기름을 부어라.”

과연 그 말씀대로 했더니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 빈 그릇들이 기름으로 가득 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되었죠.

그녀가 무엇을 했습니까?
단 한 가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빈 그릇을 준비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공급하심이 임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만히 있는다고 아무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보여주는 믿음의 원리, 은혜의 원리는 언제나 ‘믿음으로 행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단지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믿기 때문에 순종하고, 순종하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반응입니다.
특히 재정적인 문제, 삶의 고비, 위기의 순간 속에서는 믿음으로 반응하는 선택이 필요합니다.

수넴 여인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저 빈 그릇을 준비했고,
하나님은 그 순종을 통해 채움의 은혜, 기적의 은혜,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가 비워야 할 그릇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준비해야 할 순종은 무엇입니까?

기근과 가난의 때, 우리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그저 앉아서 불평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빈 그릇에 기름을 채우시듯,
우리의 삶에 하늘의 기름, 하늘의 은혜, 하늘의 회복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믿음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입니다.
믿음은 기대하며 행동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수넴 여인의 믿음이었고,
오늘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신약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기억하시죠?
작은 아이가 가지고 있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즉 어린아이의 도시락 하나로부터 시작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날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말씀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많이 흐르고, 사람들은 굶주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황 속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러자 제자들이 말합니다.
“주님,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먹입니까? 돈으로 계산해봐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만도 남자만 오천 명인데,
도시락을 어디서 사서, 어떻게 준비해서 나눌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린아이 하나가 도시락을 내놓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그 도시락은 어린아이가 하루를 살아가야 할 유일한 식사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소중한 도시락을 기꺼이 내어놓은 것입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이건 단순한 “헌신” 그 이상입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상황, 누구나 허기진 상황에서
자신의 도시락을 내놓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그 아이가 은혜를 받았던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어른이 억지로 뺏은 건 아닐까?
하지만 성경 어디를 봐도 억지로 빼앗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 아이는 자발적으로, 믿음으로 그 도시락을 드린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예수님께서 그 작은 도시락을 축복하시고 떼어 나누셨을 때,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도록 남는 은혜가 흘러 넘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며, 왕의 자녀들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를 굶기지 않으시고,
언제나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며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항상 채우시고, 도우시고, 이끄시며, 풍성하게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믿음이 부족하거나,
하나님의 공급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어떤 기근을 마주하고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기근 속에 두려움에 사로잡힐 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담대히 선 자들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렇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의 충만하심 가운데 거하는 자입니다.
나는 기근 속에서도 형통한 자입니다!”

이 믿음의 고백으로 오늘을 살아가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움츠러들지 마십시오.

기근의 때마다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공급과 은혜,
그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성경 속에서 우리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오늘 저와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가운데, 이 세상 가운데
저와 여러분을 통해 이루실 뜻과 계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계획 속에 있고, 그 은혜의 흐름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진리를 붙드십시오.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세상의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관점으로,
경험이 아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담대히 걸어가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
하늘에 속한 자요, 부족한 자가 아니라 풍성한 자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믿음이 됩니다.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지금 어떤 말씀이 여러분의 인생을 이끌고 있습니까?

세상의 한계 속에 머물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을 들어 성경 속에 등장했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십시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했고,
그 가운데서 하늘의 공급과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동일하게
저와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아멘.

 

말씀 속으로

Q1. 아브라함은 기근의 때에 어떤 실수를 했고,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셨습니까?

 

Q2. 이삭은 기근의 때에 어떻게 행동했고, 어떤 결과를 얻었습니까?

 

Q3. 요셉은 어떤 방식으로 기근의 때에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까?

 

Q4. 룻은 기근의 시대에 어떻게 은혜를 경험했습니까?

 

Q5. 사르밧 과부는 무엇으로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Q6. 수넴 여인은 어떤 믿음의 행동으로 공급을 경험했습니까?

 

Q7.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Q8. 기근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까?

 

Q9. 기근의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마무리

기근의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의 두려움과 결핍에 휩싸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요셉, 룻, 사르밧 과부, 수넴 여인, 오병이어의 소년처럼, 하나님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에게 초자연적인 공급과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의 은혜의 흐름 안에 있으며, 기근 속에서도 형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의 현실 속에서도 낙심이 아닌 믿음으로 반응하며, 하나님의 공급과 인도하심을 기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