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누가복음 10:38~42]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가장 좋은 선택을 하십시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매일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또 어떤 결정을 내릴지를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은 때로는 작고 사소한 것이지만,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결정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항상 좋은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은 유익이 되지만, 어떤 선택은 손해를 주거나 잘못된 길로 이끌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통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라는 여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맞아 집으로 모신 것이죠. 얼마나 복된 모습입니까?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저희 집으로 오세요. 제가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 하고 기쁨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셨고, 그곳에는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도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손님인 예수님을 잘 대접하고자 분주히 음식과 여러 준비를 하느라 바빴습니다. 귀한 분을 초대했는데, 맛있는 음식으로 정성껏 접대하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분주함 속에서 문득 보니,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마르다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속상했을 것입니다. 자신은 바쁘게 일하고 있는데, 동생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으니 말이죠.
결국 마르다는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동생이 저를 돕지 않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저를 좀 도와달라고 말씀해 주세요.”
아마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이해해주시고, 마리아에게 도와주라고 말씀해주실 줄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지만,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좋다. 마리아는 그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마르다의 섬김을 책망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무엇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지를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머무는 선택을 했고, 예수님은 그것이 ‘가장 좋은 편’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과는 전혀 다른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셨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마르다의 행동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귀한 손님을 초대한 만큼, 정성껏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 최선을 다해 접대하려는 마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죠. 마르다는 얼마나 고민이 많았겠습니까? “어떤 음식을 준비해야 예수님이 맛있게 드실까?”, “밥도 해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고…” 온갖 생각과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어떤 분은 아침부터 밀면을 정성껏 준비하셨다고 하더군요. “부산 밀면, 할렐루야!” 하면서요. 그렇게 이것저것 준비하고, 반찬도 만들고… 사실 음식 준비를 하다 보면 “이게 과연 입맛에 맞을까?”, “예수님은 좋아하실까?” 하는 걱정이 끊이질 않죠. 이 모든 마음이 마르다에게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보면 동생 마리아도 언니를 도와 함께 예수님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점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단 한 가지만 해도 나는 좋다. 오히려 지금 마리아가 하고 있는 일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고, 그것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단순한 섬김이나 외적인 정성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무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언니 좀 도와줘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택한 것이야말로 진짜 중요한 선택이라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무엇이 진짜 중요한가’에 대한 가치의 우선순위를 일깨워주는 장면입니다.
참 날씨가 덥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제부터 미리 준비를 했습니다. 어제 아침부터 이 예배당과 주변 공간의 에어컨을 모두 켜 두었어요. 실내 온도가 30도를 훨씬 넘다 보니, 하루 종일 틀어두어야 겨우 시원해지더라고요. 그랬더니 옆 교회 목사님께서 그러시는 겁니다. “아니, 예배당에 아무도 없는데 왜 이렇게 에어컨을 틀어 놓습니까? 전기세 아깝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처럼 더운 날씨에는 내일 아침에 갑자기 틀어도 온도가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특히 더위를 몹시 타시는 분들은 갱년기 증상도 있으셔서 정말 견디기 힘드십니다. 아침에 오셨을 때 예배당이 덥기만 하면,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예배당을 시원하게 식혀 놓아야 하는 겁니다.”
물론, 그 목사님 입장에서는 비어 있는 예배당에 에어컨을 하루 종일 켜 놓는 것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사람도 없는데 전기세 아깝게 왜 켜 놓지?”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밤새도록 켜 두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전기요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기세 조금 더 나오는 게 무슨 문제입니까? 여러분이 예배당에 와서 시원하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게 훨씬 더 중요하죠.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건 가치의 문제입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지만, 몇 가지만 하든지, 아니면 한 가지만이라도 좋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맛있는 음식이나 풍성한 대접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분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교제하는 그 시간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마르다는 분주하게 움직이며 예수님을 섬기려 했고, 당연히 마리아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일하게 두는데, 왜 말리지 않으십니까? 도와달라고 좀 말씀해 주세요.”
아마도 마르다는 마리아에게 수차례 눈치를 줬을 겁니다. “야, 예수님 오셨잖아! 빨리 와서 이것 좀 도와!” 그런데 마리아는 눈치도 보지 않고 조용히 예수님 앞에 앉아버립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마르다의 기대와는 다르게 마리아를 꾸짖지 않으시고 오히려 칭찬하십니다. 왜일까요?
마리아는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니의 눈총을 받든, 예수님 가신 뒤에 혼나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 집에 오셨고, 바로 앞에 계신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다. 이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거예요.
예수님도 아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고, 그것은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 음식을 준비하며 분주히 섬기는 일도 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편’, 그것은 바로 말씀 앞에 머물며 듣는 일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자리에 꿋꿋이 앉아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시든, 심지어 가라고 하셔도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녀는 마음으로 이렇게 고백했을지도 모릅니다.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왜일까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수많은 선택 가운데 서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가장 가치 있고 가장 중요한 선택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 앞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짜 빼앗기지 않을 복된 길임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그 질문 앞에 오늘 우리가 다시 서야 합니다.
왜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일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에 대해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렇지만, 성경에는 말씀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예수님께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오히려 떠나갔습니다. 특별히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참된 떡, 즉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험에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너무 어렵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하며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나를 떠나려느냐?”
그 질문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베드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곧 생명의 말씀이며, 그분 자신이 바로 말씀 그 자체, 생명의 근원이심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이 말씀을 떠나면 우리는 어디로 가겠습니까? 주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단지 지식을 전달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살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거듭나게 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씀을 선택하는 것, 즉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는 삶을 사는 것은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선택이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선택인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세상에는 사람을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자연인, 즉 거듭나지 않은 사람입니다.
두 번째는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또 두 부류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크게 본다면 이 세상은 결국 두 부류로 나뉩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않은 사람.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거듭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죠.
“너희가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붙잡아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진리는 이것입니다.
거듭나는 것.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아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믿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국 그 끝은 영원한 심판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믿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은 곧 생명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우리가 거듭난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마리아는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저 음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선택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 그 말씀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죽은 영혼도 살리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죽은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
우리 삶에 생명과 능력을 주고,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권능이 바로 그 말씀 가운데 있습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기억하시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마른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그 말씀은 생명을 불어넣고, 죽은 자를 일으키며,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생명이며, 능력이며, 거듭남의 씨앗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여러분, 왜 말씀을 듣는 것이 그렇게 중요할까요? 왜 마리아는 ‘좋은 편’을 선택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첫째,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며, 그 말씀을 통해 우리는 거듭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 하나님의 말씀은 거듭난 우리가 누구인지, 곧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뿐 아니라, 거듭난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말씀은 마치 거울과 같습니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외적인 모습을 확인하듯,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내면, 곧 영의 사람으로서의 나를 비추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에 거울 보셨나요?
우리는 거울을 통해 오늘 내 얼굴이 어떤지, 머리는 잘 정돈되었는지, 화장이 잘 되었는지 확인하죠.
이처럼 외모를 비추는 데는 거울이 필요하듯, 우리의 영적인 자아, 거듭난 나를 비추는 거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세상이 비춰주는 모습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살아갑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준, 세상이 말하는 성공, 세상이 말하는 외모나 능력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듭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거듭난 자는 세상적 기준으로는 내세울 것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를 택하셔서 세상의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요.
우리가 그런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의 거울로 보면 우리는 작고 부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로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 특별히 택함 받고, 부르심 받은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거듭난 순간,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놀라운 계획과 목적을 두셨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지금도 우리 안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으며, 우리는 각자 고유한 사명과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내 인생은 의미 있고, 가치 있으며,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아가십시오.
말씀을 통해 생명을 얻고, 말씀을 통해 참된 나,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나를 발견하십시오.
여러분, 사사기 6장을 보면 ‘기드온’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기드온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사사기 6장 11절을 보면 그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의 침략을 두려워하여, 포도주 틀 속에 숨어서 몰래 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타작은 넓은 타작마당에서 하는 것인데, 그는 소리조차 나지 않도록 조용히, 들키지 않게, 숨어서 곡식을 털고 있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농사를 지으면 미디안 족속이 와서 그 수확을 모두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싸울 용기도 없었고, 어떻게든 눈에 띄지 않게 살아남으려 했던 거죠.
그런데 바로 그때, 사사기 6장 12절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지금 기드온은 두려움에 떨며 숨어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향해 “큰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반전입니까?
기드온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주님,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무슨 큰 용사입니까? 저 지금 미디안이 무서워서 포도주 틀 안에 숨어 곡식을 타작하고 있는데요? 그런 저를 향해 ‘큰 용사’라니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그의 현실과 하나님의 선언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하고 소심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우리는 큰 용사입니다.
기드온은 바로 그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의 구원자’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미련하고 부족하고 실패자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로 우리를 비추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택하신 자요, 큰 용사임을 알게 됩니다.
기드온은 처음엔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의기소침한 상태였고, 타이밍도 좋지 않았습니다. 하필이면 숨어서 몰래 타작하고 있는 그 찌질한(!)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그 얼마나 민망하고 당황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시선은 현실이 아닌 정체성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숨어 있는 모습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루실 구원의 역사를 보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진짜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그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부르시는지, 그리고 우리를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하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바라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나는 약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강한 자, 하나님께서 부르신 큰 용사임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설 때,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은혜로 받은 것’을 깨닫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값없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구원은 우리가 행한 어떤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어떤 좋은 선물을 값없이 은혜로 주셨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받은 구원의 은혜, 그 깊이와 넓이를 비로소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어떻게 우리를 위한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그 진리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때문에, 우리는 믿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런 자격도 없었던 우리,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이나 착함으로 구원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알게 하고, 그 죄인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음을 알게 하며, 그분이 이루신 구원의 사역을 알게 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합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바로 이것이기 때문에, 이 말씀은 ‘은혜의 말씀’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모든 것들을 알게 합니다.
그 말씀이 있기에, 우리는 진짜 받은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놀라운 사랑을 입었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이 실제가 되는 삶, 곧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믿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서 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생깁니다. 그리고 그 들음은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어떤 교리를 가르치거나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말씀은 우리 삶에 믿음을 심어주고, 그 믿음을 통해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으로 삶이 변화되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경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백부장의 믿음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의 하인이 병들어 죽을 지경이었죠. 그때 백부장은 예수님께 나아가 말합니다.
“주여, 제 하인이 병들어 죽게 생겼습니다. 고쳐주십시오.”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주리라” 하셨을 때, 백부장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마태복음 8장 8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믿음입니까?
“주님, 굳이 집까지 오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부하들에게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도 말씀만 하시면, 그 말씀으로 제 하인이 낫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을 들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의 믿음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충분하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말씀을 믿은 대로, 그 하인은 고침을 받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줍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기적을 일으킵니다.
백부장은 말씀을 믿는 믿음만으로도 그 현실의 문제, 하인의 죽음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신 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무엇이 가장 좋은 선택입니까?
성경 속 마르다는 염려와 분주함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임을 알았기에, 그분의 발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혹시 마르다처럼, 우리의 일상과 삶 속에서 염려와 분주함에 사로잡혀 말씀 앞에 앉는 자리를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수많은 일들 속에 바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분주함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말씀 앞에 앉는 자리, 예수님의 발 앞에 머무는 시간—혹시 그것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계십니까?
눈에 보이는 것, 당장 급한 일, 외적인 결과에 집중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가장 좋은 선택은 바로 생명의 말씀을 듣는 자리,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 앞에 앉는 자리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하루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 가장 집중할 수 있는 그 순간을 예수님의 발 앞에 앉는 시간으로 구별해 보십시오.
염려와 근심이 밀려오는 때가 있습니다.
삶의 문제와 무게 때문에 밤잠을 이루지 못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일수록 말씀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 말씀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오늘도 분주함 속에서 말씀을 놓치지 말고, 말씀의 은혜를 누리는 삶의 방향으로 전환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장 좋은 선택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발 앞에 앉아 그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우리의 존재와 생각을 변화시키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합니다.
이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또 바쁜 하루하루 가운데서도, 매일 말씀 앞에 앉는 선택을 하십시오. 그리고 그 선택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다시 한번 선포합시다.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오늘 그 말씀의 은혜와 생명이 여러분의 삶에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1. 최근 내가 선택한 것 중에서 “마르다의 선택”과 같은 것은 무엇이 있었나요?

    • 그 선택이 분주함과 염려에 근거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말씀 앞에 머무는 선택이었는지를 나눠봅시다.

  2. 내 삶 속에서 ‘예수님의 발 앞에 앉는 시간’은 어떻게 확보되고 있나요?

    • 말씀을 듣는 자리를 우선순위로 삼기 위해 실천하고 있는 습관이나 노력은 무엇인가요?

  3. 나는 나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나요?

    •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로 내 정체성을 바라본 적이 있나요?
      “큰 용사”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믿고 있는지 나눠봅시다.

  4. 말씀을 통해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은혜는 무엇인가요?

    • 말씀 속에서 “내가 이런 자였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깨달은 적이 있다면 함께 나눠주세요.

  5.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실제로 생긴 믿음의 변화나 기적이 있었나요?

    • 백부장처럼, “말씀만 하옵소서”라는 믿음으로 응답을 경험한 순간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마무리

결국 우리가 인생에서 내려야 할 가장 중요한 선택은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마르다가 분주함과 염려 속에서 놓쳤던 그 자리를, 마리아는 놓치지 않고 지켰고, 예수님께서는 그것이 ‘가장 좋은 편’이며 결코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수많은 선택과 분주함 속에서도, 진정한 생명과 정체성과 능력을 주는 말씀 앞에 머무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을 변화시키는 가장 가치 있는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