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빌립보서 4장 4~7절

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5.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감사로 주시는 하나님의 평안

여러분, 한 주 동안 감사가 가득한 삶을 살아보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묵상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기에, 믿음으로 행할 때 열매 맺는 삶이 되고, 그 삶은 결국 더 풍요롭고 기쁨과 평안이 넘치게 됩니다.

이번 한 주 동안 감사함을 찾아보셨나요?

다른 때보다 더욱 감사할 이유를 찾아보고,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막상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잘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많은 일을 보고 듣고 부딪히며 마음과 생각을 빼앗길 때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선언합니다: “나는 영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거듭난 영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것이 진짜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근본으로 돌아가 “나는 누구인가”를 묵상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거듭난 영입니다. 생각을 가진 혼으로 이 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며 많은 어려움과 도전을 마주합니다. 한 주 동안 돌아보면 기쁨과 평안이 가득한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걱정과 근심, 낙심과 좌절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를 때가 많습니다. 일상의 부딪힘 속에서 고민하고 생각하고 집중하게 되면, 마음속 깊이 불안과 초조, 근심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은 한숨입니다.

기분 좋았다가도 그 생각이 들어오면, 무겁고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에 마음을 두느냐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일들을 깊이 바라보고 그곳에 마음을 두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불안과 두려움, 걱정과 근심이 마음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면 얼굴빛도 어두워지고, 마음 속 기쁨과 평안은 자리를 잃게 됩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무엇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마음의 상태가 달라진다.”

거듭난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의 문제와 걱정에 집중한다면, 그 마음은 무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담대함과 평안으로 채워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하듯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면 기뻐할 일이 많지 않아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을 돌려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고, 주님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될 것이라.”

바울은 현실의 고난과 환란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에는 시험과 핍박, 예상치 못한 사건과 관계의 어려움, 직장과 가정의 문제,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수많은 요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주목하는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영광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잠시 있다 사라질 것들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합니다.

하늘의 것에 시선을 두면, 우리는 현실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은 상황이 아니라 시선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우리의 감정과 생각과 얼굴빛을 결정합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어서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염려한다는 것은 그 문제에 주목하고, 깊이 생각하고, 집중하고, 마음을 빼앗기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염려는 불안과 초조를 만들고 결국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성경은 그런 염려를 멈추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염려하다’라는 단어는 단순히 걱정하는 감정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의 의미를 보면, ‘주의 깊게 관심을 갖다, 어떤 것에 집중하거나 열중하다,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다’라는 뜻을 포함합니다. 즉, 염려란 단순히 마음이 불편한 상태가 아니라, 그 문제를 계속 바라보고, 그것에 마음을 붙들리고, 생각이 사로잡힌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은 곧 “그 문제에 집중하지 말라, 거기에 마음을 머물지 말라”는 뜻입니다.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순간, 마음에 불안과 초조가 들어오고, 걱정과 근심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얼굴빛도 어두워지고, 기쁨과 감사는 사라지게 됩니다. 이것이 염려의 결과입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족하니라.”

즉, 문제를 미래까지 끌고 가며 붙잡고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제를 생각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염려는 우리의 믿음을 약하게 하고 시선을 흐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해야 할 바른 선택을 제시합니다: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바라보며 염려하지 말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기도와 간구로 올려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표현이 이어집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입니다.

감사가 있는 기도는 이미 응답받았음을 믿고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말씀에 근거해 믿음으로 구할 때, 감사할 이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아버지께서 주시리라.” (요 16:23)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그러므로 우리가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 감사함으로 기도한다면,

그분은 반드시 응답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평안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샬롬)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붙들고 지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평강이 마음을 다스릴 때, 외부의 환경은 여전히 어렵다 해도 그것에 흔들리지 않는 담대함과 안정이 우리 안에 생깁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때,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문제에 흔들리지 않고 믿음 안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승리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영 안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은혜가 실제 삶으로 흘러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과 생각이라는 통로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영적 원칙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따라서 성경은 반복해서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 평안하라.”

예수님께서도 부활 후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평안하라(샬롬).”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우리가 누리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값 주고 사신 영원하고 견고한 평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에 주목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주목할 것인가?

문제에 집중할 때 우리의 마음은 무거워지고 압박받으며 흔들립니다.

하지만 말씀에 집중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붙들고 지켜 줍니다.

현실에서는 여전히 도전과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일 수 있습니다.

직장의 어려움, 사업의 압박, 관계의 갈등, 가정의 근심, 자녀의 문제, 미래의 불확실함…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 자체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우리를 흔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문제를 붙잡고 끌어안고 고민 속에 머무르는 대신,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맡겨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고,

그 평강 안에서 기쁨과 감사가 회복됩니다.

우리가 삶 속에서 염려와 근심을 계속 붙들고 있으면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짓누르고, 믿음의 힘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문제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내려놓는 순간,

우리 안에서 새 힘이 솟아오르고 정리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무엇을 붙잡을 것인가?”

문제가 아니라 말씀을 붙잡는 삶,

염려가 아니라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삶,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을 선택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두 가지 종류의 근심을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다른 하나는 세상적인 근심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구원에 이르게 하고,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룬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말씀에 집중하게 하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며 우리의 믿음을 성숙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세상 근심은 우리 영혼을 무겁게 하고, 마음을 짓누르고,

결국 생명을 빼앗는 방향으로 우리를 끌어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향한 근심을 가질 것인가, 세상을 향한 근심을 붙들 것인가.

세상을 향한 근심을 계속 붙잡으면 마음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를 회개의 자리로, 믿음의 자리로 이끌어

오히려 생명과 열매를 낳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상의 염려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처럼,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말씀의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 염려가 마음을 메우면, 말씀은 자랄 공간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묵상하며 깊이 마음에 심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순간 무의식 중에서도 말씀이 우리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무의식의 세계는 우리가 통제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꿈처럼 스스로 꾸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할 때,

무의식 중에서도 말씀이 작동하여 우리의 삶을 인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구원과 회복의 역사를 계획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그 일을 완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에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완성의 결과가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듭난 영으로서의 권세와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에베소서는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리고 그 결론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늘의 유업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거듭난 영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삶 속에서 때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충분히 나타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믿음으로 선택하고 붙잡는 행동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은혜는 이미 주셨지만, 그 은혜를 믿음으로 취하는 것은 우리의 선택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사건을 통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하셨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선악과는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경계를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었고,

그 자유를 통해 아담과 하와는 생명을 선택하는 대신 사망을 가져오는 길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아담은 결과를 몰라서 선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며 동행했던 존재였습니다.

그는 선택의 결과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알면서도 선택했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자유의지가 작동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하자면,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시고,

성령을 보내시며,

말씀을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없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삶에서 실제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가 말씀을 선택하고, 믿음을 선택하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강제로 우리를 끌어가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말씀을 붙잡으라. 말씀에 주목하라. 말씀을 선택하라.”

우리가 말씀을 붙잡을 때,

그 말씀은 생명을 나타내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가 세상에 주목하고, 문제에 집중하고, 두려움과 불안을 붙잡는다면

그 결과는 성경이 말한 대로 사망의 열매를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말씀인가, 염려인가?

평강인가, 근심인가?

믿음인가, 두려움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하는 이는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 앞에 두려워 떨며 갇혀 있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문제 속으로 들어가 믿음으로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단순히 “기도하라”라고만 말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아뢰라”**라고 덧붙입니다.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는 이미 응답을 믿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변하지 않았어도,

기대한 결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았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감사할 때,

그것이 바로 믿음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에 관해 놀라운 약속을 주셨습니다:

📌 요한복음 16:23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 요한복음 16:2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 요한복음 14: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기도할 때 감사함을 더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믿음의 선포이며,

응답이 현실이 되기 전에 먼저 영적으로 취하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약속합니다:

📌 빌립보서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은 단순한 마음의 안정이나

조금 편안해지는 감정의 상태가 아닙니다.

헬라어 **‘에이레네(평강)’**는

마음과 생각을 강하게 붙잡고 보호하는 강력한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즉, 외부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그 환경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여전히 문제는 존재할 수 있고,

도전과 시련은 계속 올 수 있으며,

상황은 즉시 해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믿음의 눈을 열어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만듭니다.

문제를 바라보던 시선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으로 옮겨질 때,

우리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서게 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참된 평안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 “평안할지어다. 샬롬.”

그분이 징계를 받으심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상함을 받으심으로

우리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분이 대신 짐을 지심으로

우리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예수님을 바라볼 것인가?

염려할 것인가, 기도할 것인가?

불안에 붙잡힐 것인가, 평강을 붙잡을 것인가?

우리의 삶 속에는 언제나 마음을 흔들고 낙심하게 만드는 많은 상황들이 찾아옵니다.

예상치 못한 문제, 인간관계의 갈등, 현실적인 부담, 경제적 압박, 미래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일들은 우리의 생각을 무겁게 하고, 한숨이 깊어지게 만들며,

어느 순간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마음이 눌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 말은 단순히 ‘걱정하지 마라’는 감정적인 위로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염려를 억지로 참거나 감추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십니다.

문제를 붙잡고 고민하는 대신,

그 문제를 하나님의 손에 올려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평강은 문제 해결 이후에 찾아오는 결과가 아닙니다.

평강은 문제 속에서 믿음을 선택할 때 찾아오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환경이 바뀌기 전에 먼저 마음이 바뀌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샬롬의 역사입니다.

문제를 붙잡고 계속 생각하면 불안과 초조가 마음을 채웁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안이 마음을 지키기 시작합니다.

평안을 경험한 사람은 상황이 바뀌기 전에

이미 승리한 자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해야 합니다.

문제와 염려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감사와 기도를 선택할 것인가?

기도는 상황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는 행위이고,

감사는 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는 태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손을 떼는 것이고,

감사는 하나님의 손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절대 혼자 두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도우십니다.

우리가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평안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참된 승리의 시작입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야 평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이 마음을 지키기 시작할 때 이미 승리가 시작됩니다.

현실은 변하지 않았어도, 마음이 변하면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며,

행동이 바뀌면 결국 삶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합니다.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난다.”

마음이 평강으로 채워지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말씀으로 채워지면 문제는 더 이상 우리를 끌고 다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에게 안정과 담대함을 주며,

믿음의 선택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이 주는 평안은 조건적입니다.

형편이 좋아야 평안하고, 문제가 해결되어야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조건을 초월한 평안입니다.

풍랑 속에서도 잠 잘 수 있는 평안,

감옥에서도 찬양할 수 있는 평안,

눈물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기쁨과 감사는 선택이며, 믿음의 행위입니다.

상황이 좋아져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격려해야 합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우리가 같이 믿음의 길을 걸으며 서로를 축복할 때,

그 기쁨은 더욱 커지고 공동체의 은혜도 깊어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참된 평안을 누리며

근심과 염려에 묶인 삶이 아니라,

승리와 기쁨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 문제를 바라볼 것인가, 말씀을 바라볼 것인가

📌 염려에 사로잡힐 것인가, 감사함으로 기도할 것인가

📌 두려움의 말을 할 것인가, 믿음의 고백을 할 것인가

📌 평강을 선택할 것인가, 근심을 붙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그 한마디가 우리의 근거이며 foundation입니다.

그 약속 위에 설 때, 우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염려에 머무르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상황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담대해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합니다.

문제에 집중하지 않고, 말씀에 집중하는 것.

근심을 붙잡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

불평하는 입술이 아니라, 감사하는 입술을 선택하는 것.

두려움의 생각이 아니라, 믿음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그 평강 안에서 우리는 참된 자유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평강이 흘러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가정과 공동체와 일터를 변화시키는 능력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거듭난 영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평안의 주님 안에 있습니다.

나는 말씀을 선택합니다.

나는 감사함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