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시편 105:1~4]

1.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3.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감사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시오!

선선한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낙엽이 천연색으로 물드는 모습을 보면서,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나오는 절기는 아닙니다. 이 절기는 1600년대 영국 청교도들이 박해를 받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지금의 미국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낯선 환경 속에서 집을 짓고, 가져온 씨앗을 심어 땅을 개간하며 1년을 버텼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박해를 피해 정착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뿌린 씨앗이 자라 첫 수확을 얻었을 때, 그 기쁨과 감사는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박해를 피하여 자유의 땅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한데, 그 땅에서 농사를 지어 소출까지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벅찬 은혜였겠습니까?

그 첫 수확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린 것이 바로 추수감사절의 시작입니다. 이후 여러 과정을 거쳐 1863년 링컨 대통령에 의해 공식적인 국가 공휴일로 제정되었고, 미국에서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로 정해졌습니다. 한국에는 복음과 함께 이 절기가 전해지며 우리도 11월 셋째 주에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적 절기라기보다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생겨난 감사의 절기입니다. 그러나 성경 안에도 ‘추수에 감사하는 절기’가 있습니다. 바로 수장절, 혹은 초막절(장막절)입니다. 이 절기는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여호와의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절기를 만드셨는지, 그 목적과 의미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유대인의 달력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과 달리, 유대인들은 민간력(유대력)을 사용했고, 출애굽 사건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종교력이 만들어졌습니다. 태양력으로 보면 9~10월 무렵이 유대력으로는 새해가 되는 시기이며, 이때가 바로 나팔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유월절을 제정하시며 “이 달을 너희에게 첫 달이 되게 하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출발점을 새롭게 정하신 것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죽음의 재앙이 넘어갔고, 이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곧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유월절 어린양을 예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새 출발의 시작으로 삼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출발점 역시 예수님의 피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유월절과 함께 시작되는 절기가 무교절입니다.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을 먹는 기간으로, 이는 부풀려지지 않은 순전한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이어서 안식 후 첫날이 되면 초실절이 찾아옵니다. 초실절은 보리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감사로 드리는 날인데, 바로 이 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부활의 첫 열매”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들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모두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농사절기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실 구원의 계획을 계속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초실절이 지나면서 보리 수확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 기간은 총 7주, 즉 49일 동안 이어집니다. 그래서 이를 칠칠절(77절)이라 부르며, 보리 추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을 맥추절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초실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신약에서는 이 날, 약속하신 성령님께서 강림하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 신약에서는 성령이 임하신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그분의 백성을 세우시는 날이었던 것이죠.

그 다음 찾아오는 절기가 나팔절입니다. 유대력으로 7월 1일, 우리 달력으로는 9월 초쯤이 됩니다. 나팔절은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이며, 신약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을 상징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들은 예수님의 초림—죽음—부활—성령 강림—그리고 다시 오심까지를 차례대로 보여주는 놀라운 시간표이기도 합니다.

나팔절이 지나고 열흘 뒤에는 대속죄일이 옵니다. 이 날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들의 1년간의 죄를 속죄하는 날입니다. 속죄의 피가 휘장과 언약궤에 뿌려지고, 죄가 덮어지는 날이죠. 그리고 그로부터 닷새 뒤, 유대력 7월 15일에 마지막 절기인 초막절(장막절, 수장절)이 찾아옵니다.

초막절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살며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던 것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40년 동안 의복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는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사람이 살기 어려운 광야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수 있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둘째, 초막절은 모든 추수가 끝나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추수의 완성,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때를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시는 최종 수확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가장 큰 기쁨의 절기이며, 마지막 8일째 되는 날은 호산나 라바(대축제의 날)라 하여 밤새 축제가 이어집니다.

이 절기 동안 사람들은 비를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다음 해의 이른 비와 늦은 비도 허락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농사에 있어 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듯, 우리의 영적 삶에도 생수 되시는 성령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의 마지막 날, 곧 8일째 되는 호산나 라바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장면입니다. 축제의 절정 속에서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제사장들과 지도자들도 어린아이처럼 춤추며 찬양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로 그 밤과 새벽에, 전혀 다른 분위기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이 가늠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끌고 왔던 것입니다. 모두가 축제에 참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그들은 오히려 죄인을 찾느라 돌아다녔고, 결국 예수님께 데려와 고발했습니다. 그들의 행위가 가진 위선과 냉혹함이 드러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에 글을 쓰신 후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고발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그리고 바로 이 초막절 시기, 예수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올 것이다.”

요한복음은 이것이 성령님을 가리킨 말씀이라고 기록합니다. 초막절은 추수와 물을 주제로 한 절기입니다. 농사가 잘 되기 위해 하늘의 비가 필요하듯, 우리의 인생과 영혼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 곧 성령님의 역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밝히 보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초막절과 수장절은 단순히 농사의 감사절기가 아니라, 장차 우리에게 오셔서 영원한 생수를 공급하실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역을 깊이 연결하여 보여주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주에 지키지만, 사실 히브리 절기의 흐름으로 보면 초막절은 태양력으로 대략 9~10월, 즉 추석 시기와 비슷합니다. 우리의 달력 기준과는 조금 차이가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날짜가 아니라 감사의 마음입니다. 초막절이든 추수감사절이든,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고 풍성하게 하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초막절을 주신 이유도, 그들의 광야 생활 속에서 베푸신 은혜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를 지키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그 은혜를 고백하며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지낼 때, 단순히 농사가 잘 되었다는 이유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상과 삶 전체를 지켜주신 은혜, 그분이 인도하신 걸음걸음, 그리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지켜주신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초막절 역시 그런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지낸 40년 동안 날마다 공급해 주셨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고, 옷과 신발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낮과 밤을 지켜주셨습니다. 물이 없을 때는 반석에서 물을 내셔서 목마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만한 환경이 아닙니다. 척박하고 건조하며 생명이 유지되기 어려운 땅입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초막절은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초막을 만들고 7일 동안 그 안에서 잠시 거주하며, 조상들이 광야에서 받았던 은혜를 체험적으로 되새겼습니다. 그리고 모든 추수가 마무리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수장절과 초막절은 이렇듯 하나님께서 베푸신 풍성한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초막절은 1년 중 가장 기쁨이 넘치는 축제입니다. 마지막 8일째는 ‘호산나 라바’라고 부르며, 온 백성이 밤새워 기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내년에도 알맞은 때에 비를 내려주시기를 구하며, 모든 수확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인정하고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통해 자연스럽게 초막절의 영적 의미와 닮아 있는 부분을 확인하게 됩니다. 비록 날짜는 다르지만, 본질은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절기를 주신 이유도 우리의 삶과 연결된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해 동안 특별한 변화나 큰 성취가 없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크게 부유해진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신 은혜는 그 어떤 것보다 크고 귀합니다. 말씀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깨달음이 있었던 것, 영적으로 성장한 부분들,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우신 순간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감사해야 할 이유가 눈앞에 뚜렷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무엇을 감사해야 하지?”라는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감사는 눈에 보이는 성과나 결과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하루하루 속에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셀 수 없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1년 동안 우리 삶을 돌아본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신 순간들, 인도하신 길, 생각을 변화시키신 은혜, 말씀을 통해 힘을 주신 경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때로는 재정적으로 풍성하지 않아도, 혹은 눈에 띄는 성취가 없었어도, 하나님이 주신 작은 변화와 소소한 성장들이 있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지고, 말씀을 통해 마음이 새로워지고, 어려움 속에서도 버틸 힘을 주신 것… 이런 은혜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내면에서는 큰 열매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무엇을 얻었는가”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셨다”는 사실을 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제가 이전에도 했던 말이지만 다시금 강조합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감사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잊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절기조차도 기억하게 하기 위한 장치로 주셨습니다. 유월절도, 초막절도, 맥추절도 모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주간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일들, 한 해 동안 인도하신 일들을 기억할 때, 감사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옵니다. 어떤 기도는 빠르게 응답되었고, 어떤 기도는 기다림이 필요했으며, 때로는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셨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할 때 우리는 더욱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절기를 통해 “잊지 말라. 기억하라”라고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기억할 때 감사가 회복되고, 감사가 회복될 때 믿음도 함께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절기들은 단순한 행사나 의식이 아니라, 그분이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고, 감사하지 않으면 믿음도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기억하라”는 말씀이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순간들을 돌아볼 때, 감사는 자연스럽게 회복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억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일들을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절기를 지키며 감사할 때, 단지 음식을 나누거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삶을 어떻게 붙들어주셨는지를 깊이 되새기는 시간이 됩니다.

한 주간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한 해 동안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십시오. 무엇을 심게 하셨고 무엇을 거두게 하셨는지 기억하십시오. 어떤 기도를 하게 하셨고 어떻게 응답하셨는지를 기억하십시오.

기억 속에서 감사가 다시 살아납니다. 때로는 더디고 인내가 필요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쓰러질 것처럼 힘들던 날에도 다시 일어날 힘을 주셨고, 답이 없던 문제에도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을 기억할 때, 우리의 감사는 더욱 깊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제정하신 성찬 또한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은 떡과 포도주를 나누시며 “내가 올 때까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은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과 피로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그 기억 속에서 감사가 살아나며, 감사를 통해 믿음이 더욱 굳게 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이유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05편은 감사의 본질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감사는 단지 마음속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까지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세상 가운데 선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어지는 2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즉, 감사는 고백이고 선포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놀라운 일들을 입술로 말하고, 찬양하고,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 속 ‘감사 제사’ 역시 나만의 감사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와 함께 나누고 하나님을 높이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구약의 감사 제사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있습니다. 감사제물로 드린 떡은 제사장에게 일부가 가고, 나머지는 집으로 가져가 그날 밤 모두 먹어야 했습니다. 혼자 먹을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이웃과 친척들을 불러 함께 나누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이 묻습니다.

“이 떡은 무슨 떡입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때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일을 말하는 것, 이것이 감사의 본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런 은혜를 주셔서 감사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고백이 빠져서는 감사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먹는 작은 떡 한 조각이라도,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가 담겨야 합니다. 그냥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이한 일들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먼저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감사는 말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소산을 가지고 진실하게 드려야 합니다. 감사는 마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표현될 때 온전해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감사가 삶의 우선순위가 되려면, 우리의 시간과 섬김과 물질도 감사의 방향으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때는 특별한 예물, 특별한 결단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마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실제적인 헌신과 표현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의 포인트—

감사는 나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드리고, 또 성도들과 나누고,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것까지가 감사의 완성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열매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람을 통해 우리에게 은혜를 흘려보내십니다. 누군가의 기도, 누군가의 섬김, 누군가의 호의가 우리의 삶을 세우고 지탱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동시에, 나에게 호의를 베푼 사람들에게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신앙생활 가운데 ‘혼자서’ 성장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군가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었고, 마음으로 품어 주었고, 어려울 때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금요일 기도회 때마다 성도들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불러가며 축복하는 기도의 시간도 바로 그런 은혜의 통로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큰 은혜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반드시 흘러가야 합니다.

→ 하나님께 드리고

→ 공동체와 나누고

→ 나에게 선을 베푼 사람들에게 건네는 것.

이 흐름이 있어야 감사는 살아 있습니다.

너무 받기만 하지 말고, 주는 사람이 되십시오.

감사가 있는 사람의 삶에는 ‘주는 습관’이 생깁니다. 감사는 마음을 넓히고, 관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함을 채워 넣습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랑받고 기억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도움을 받았어도 감사가 없는 사람은 이내 잊혀지고 신뢰를 잃습니다. 그래서 감사는 단지 예의가 아니라, 우리를 높이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성경에서도 말하듯,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더 큰 복을 맡기시고 더 높은 자리로 이끄시는 은혜가 임합니다.

감사는 우리를 승진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자는 반드시 높여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는 특정한 날에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범사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도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감사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삶의 태도입니다. 감사는 상황을 초월합니다. 좋은 일에도 감사하고, 어려운 일에도 감사하며, 아직 응답되지 않은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크기와 깊이를 보여 줍니다.

감사할 만한 제목이 많으면 감사가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반대입니다. 감사의 마음은 “감사할 일을 찾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단순히 감사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감사할 제목을 찾아보라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감사를 되새기다 보면 우리의 시선이 달라집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 깨닫게 되고, 작게 보였던 일에서도 하나님이 일하셨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감사는 단지 “마음이 좋은 날 하는 고백”이 아니라, 믿음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감사할 제목들을 기억하고 찾아보면, 마음 깊은 곳에서 진짜 감사가 흘러나옵니다.

감사는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기억과 깨달음에서 흘러나오는 믿음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은 바로 이런 깨달음을 회복하는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돌아보고, 작은 일 속에서도 은혜를 발견하며, 인생의 걸음걸음이 모두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추수감사절의 핵심은 특별한 상황이나 풍성한 결실이 아니라,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수많은 은혜들을 찾아보고, 그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높이는 통로이며 동시에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감사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관계가 치유되고, 영적인 눈이 밝아지며, 더 큰 은혜가 흘러옵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에 생수를 공급하는 성령의 통로입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삶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 능력입니다.

감사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함으로 믿음을 더욱 확고히 세우는 삶이 되도록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