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야고보서 1:12~18]
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16.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7.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8.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거듭난 자의 정체성과 승리하는 삶
지난주에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정말 다양한 문제와 시험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그 시험을 통해 우리는 결국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하지요. 오늘은 이 ‘시험’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시련을 견뎌낸 자는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시험은 단순한 문제 상황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를 깊이 도전하는 상황일 수 있습니다. 특히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인해 고난과 핍박, 환란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한 시련은 결코 가볍지 않았지만, 그 가운데 믿음을 지키며 인내한 자들은 결국 실현된 믿음의 결과,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보며 이렇게 깨닫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시련과 핍박,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는 일이구나.’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따르고 나를 사랑한다면, 세상이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 그것은 때로 세상으로부터 미움과 지탄, 심지어 핍박을 받는 삶임을 의미합니다. 어쩌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그리스도인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시련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가 그것에 눌려 넘어지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그 시련을 참고 견뎌내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상은 바로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영광입니다.
이 시험에 대해 성경은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곧 유혹을 뜻합니다. 즉, 사람을 넘어뜨리고 멸망에 이르게 하려는 목적을 가진 시도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절대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삶에 찾아오는 문제나 어려움을 잘못 해석할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고난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야”라고 말하며 낙심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유혹이나 죄의 길로 빠지게 하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은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존귀한 자녀로 삼으셨고, 오늘의 말씀처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되신 하나님은 자녀에게 꼭 필요한 것, 좋은 것, 합당한 것만을 주십니다. 결코 자녀가 미혹되어 넘어지게 하고 멸망에 이르게 하는 일을 허락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부모라면, 힘 있고 능력 있는 좋은 부모라면 자녀에게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악한 자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하거늘, 하물며 완전하신 하늘 아버지께서 어떻게 자녀에게 해로운 것, 유혹되는 것을 일부러 주시겠습니까? 그런 분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습니다. 그토록 사랑하신 자녀를 유혹에 빠뜨리려 하신다? 그럴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으로 말미암음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즉,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부분을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험과 시련, 하나님의 훈련과 유혹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을 만나더라도, 그리스도인은 결국 승리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이 말씀은 결국, ‘너희가 누구인가’, ‘너희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 속에서 수많은 어려움과 시험,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는 누구냐?”
“너의 정체성이 무엇이냐?”
시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아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능력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헌신이 부족하거나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거듭난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 시련, 인내… 인생에서 맞이할 모든 과정이 있다 할지라도, 너희가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고, 그 계획은 반드시 은혜로, 그리고 승리로 이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승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존재로 부르셨는지를 모르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18절을 통해 그 결론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첫 열매, 곧 가장 귀하고 소중한 존재로 우리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는 것, 그 말씀 안에 우리의 정체성과 존재의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 자들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존재이며, 하나님께서 택하신 피조물 중의 첫 열매, 곧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진 자들입니다.
이 정체성을 깨달을 때, 우리는 어떠한 시험과 시련 속에서도 능력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운동선수들이 훈련을 하다 보면 슬럼프에 빠질 때가 있죠. 열심히 노력했는데 실력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성장이 정체된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은 운동선수들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어떤 목표를 가지고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나아갈 때 비슷한 정체의 순간을 겪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합니다.
‘내가 왜 이 일을 계속해야 하지?’
‘이걸 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이러한 질문들이 마음속을 끊임없이 흔들고, 결국 실력이나 성과가 발전하기보다는 오히려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죠. 왜냐하면 이미 생각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운데,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붙잡지 못한 채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제로 많은 성공한 사람들, 슬럼프를 이겨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때는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해.”
왜냐하면 그 시기의 생각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운동선수라면 훈련이 잘 안 될 때 기초 동작부터 다시 반복하듯이, 그리스도인도 신앙의 길에서 흔들릴 때는 신앙의 기초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혼란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다 보면, ‘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인데 왜 내 삶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 ‘왜 더 이상 전진이 없을까?’,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막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이런 고민들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바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한 번 나의 존재 이유, 내가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믿음의 기초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는 것, 그것이 회복의 첫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거듭난 나는 어떤 존재인가? 새롭게 태어난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여러 가지 시험과 시련, 정체성의 혼란, 삶의 목적에 대한 의문,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내 존재의 정체성, 그 근본으로 돌아가 다시 믿음으로 세워져야 할 때입니다. 승리의 삶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 ‘거듭남’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거듭남’이라는 개념이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장면은 요한복음 3장입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하시는 장면이죠.
니고데모는 매우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고, 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구인 산헤드린 공회원, 곧 유대 사회의 정치·종교·학문을 겸비한 엘리트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한 지식도 뛰어난 자였습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유심히 살펴보던 중,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기적과 표적들—병든 자를 고치고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는 그 장면들을 직접 보게 되죠. 그는 호기심과 경외심을 안고, 밤에 조용히 예수님을 찾아와 묻습니다.
“선생님, 당신이 혹시 메시아이십니까? 성경에는 메시아가 오면 나타날 여러 징조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제가 보기엔 당신이 바로 그 분 같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그리고 이어서 ‘거듭남’에 대해 설명하시죠.
여기서 말하는 ‘거듭남’(ανωθεν)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첫째는 ‘위로부터 나는 것’, 둘째는 ‘처음부터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는 위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성령으로, 말씀으로, 곧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태어난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야고보서 1장 18절도 이 진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거듭남이란, 곧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금 묻습니다.
“너는 누구인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거듭난 자가 되었다는 것이며, 거듭났다는 것은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태어난 존재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부모를 통해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너희는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느니라.”
어떻게 다시 태어납니까? 바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이 말씀이 말해주는 바는 단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매우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며 육신을 입고,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익숙해져 살아가다 보니, 우리 자신을 감각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늘 접하는 것들이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고, 감각에 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중요한 건,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환경이나 느낌, 감정만으로 나를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말씀의 관점으로, 나 자신을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거듭난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롭게 태어난 존재입니다. 육신적으로는 부모의 혈통을 따라 태어났지만, 진짜 나, 속사람인 나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 썩지 아니할 말씀으로 다시 태어난 존재입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를 점점 더 닮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그 씨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 다시 말해 거듭난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의 씨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우리는 그 말씀의 씨로 인해 새로운 본성을 가진 존재가 된 것입니다. 얼마나 특별합니까?
우리는 때로 육신 속에서 살아가며,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감각대로 판단하며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영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늘 원점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겉사람이 아니라, 이 안에 있는 속사람,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영의 사람, 진짜 나를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요?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썩지 않을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로부터 태어난 존재입니다. 바로 그 거룩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분명 육신적으로는 부모의 혈통을 따라 태어났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육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 선포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단순히 ‘깨끗해졌다’는 의미를 넘어서 있습니다. ‘새 것이 되었다’는 것은, 마치 더러워진 옷을 세탁해 다시 입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본질로 창조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새롭다’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 ‘카이노스’(καινός)는 단순히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는, 전례 없는 새로운 종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본질로, 하나님의 손으로 새롭게 창조된 존재가 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우리의 과거, 혈통, 삶의 이력보다도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합니다.
“오직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니라.”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 성경은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거듭났다는 것은 단순한 도덕적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에 속한 자, 곧 신성한 생명을 나눠 받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성경은 선포합니다.
이처럼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는 단지 구원받은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다.
나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이며,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이 정체성을 바르게 알고 붙잡을 때, 우리는 어떤 인생의 문제나 상황 속에서도 육신의 기준이 아닌 영의 기준, 하나님의 말씀의 관점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우리를 가리켜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던 새로운 존재”라고 선언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깊이 묵상하고, 반복해서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누구입니까?”
“거듭난 당신은 진짜 어떤 존재입니까?”
과연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런 존재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정체성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육신적인 자아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즉, 경험과 감각 중심의 생각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현실을 한번 돌아보십시오. ‘거듭난 나’가 아닌, ‘세상의 기준’에 묶인 육신적인 나, 눈에 보이는 환경과 느껴지는 감정 속에서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어떤 분은 그 현실을 보며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처럼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난 상황 속에서는 기쁨이나 평안보다 고통, 낙심, 좌절이 밀려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육신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본다면, 그 환경을 이겨낼 힘도, 견딜 수 있는 용기도, 앞으로 나아갈 소망조차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누구인가를 알라.”
“너희는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매일같이 물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거듭난 존재임을 기억할 때, 그 안에서부터 견디는 힘이 생기고, 인내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며, 상황을 다스리고 변화시키는 지혜 또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처음으로, 말씀 앞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붙들고,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만이 중요하니라.”
이 말은 우리가 어떤 민족 출신인지, 율법을 따랐는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지음 받은 새로운 피조물인지가 가장 본질적인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꾸 보이는 것, 느껴지는 것, 되어진 결과들에 집중하지만, 성경은 말합니다.
“지금 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아는 것이다.”
“새롭게 창조된 자” —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왜 이것이 중요할까요? 그것이 진짜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짜로부터 모든 변화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하늘의 것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복을 이 땅 가운데 나타내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이 먼저 변해야 할까요? 바로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입니다.
세상의 감각에 끌려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새롭게 지음 받은 나의 정체성을 다시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은 특별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다시 붙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고백해야 합니다.
“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음을 받은 자입니다.”
이 정체성을 마음 깊이 새기며, 감각이 아닌 말씀으로, 상황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회복하는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한일서 3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여기서 사용된 ‘자녀’라는 단어는 단순히 상징적이거나 비유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는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 즉 생물학적으로 출생한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입니다. 성경은 단지 우리를 비유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존재, 그분의 생명과 본성을 실제로 나눠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왜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 곧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자녀”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그분의 성품, 생명, 본성에 참여한 거룩한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어떤 생각, 어떤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말씀을 우리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 아침 만나를 거두어 먹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주신 이유는 단순한 식량 공급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실제로 만나를 먹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으면 만나를 거둘 수 없었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만나 자체가 아니라, 그 만나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삶을 훈련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거듭난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 말씀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라.”
또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의 말씀의 중요성을 정말 알고 있다면, 그 말씀을 더욱 가까이하고, 더욱 묵상하며,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도록 해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비결, 한 단계 더 전진하고 성장하는 비결,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복음의 말씀을 더 깊이 사랑하고, 생명의 양식으로 삼고,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해봅시다.
“영인 나는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거듭난 내가 누구인지,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올바르게 알고 붙잡는다면, 승리의 삶은 반드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나는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영인 나는 성령으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말씀, 곧 복음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이자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연약함을 너무나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또한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거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보혜사로서, 위로자요 도우시는 분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과 더불어, 반드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생각나게 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도우시는 분입니다.
결국 우리는 말씀으로 살아가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살아갈 때, 진리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삶 가운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 있으신가요?
때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중요한 선택과 전진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먼저 붙잡아야 할 기준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 우리 안에 보내신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우리 안에 성령님을 보내셔서 삶의 길을 가르쳐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뜻 가운데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놀라운 은혜이며, 축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의 연약함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승천하시기 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주셨고, 또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은 지금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으로 거하시며 보혜사로서, 도우시고 가르치시는 분이 되십니다.
로마서 8장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또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며, 우리 삶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과 성령, 이 두 가지를 붙들어야 합니다.
삶의 결정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서야 합니다:
“지금 성령님이 내 안에서 어떻게 나를 인도하시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그리고 기도 가운데 분별하고 있는가?”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승리하며 살아가는 비결이며, 한 걸음 더 전진하고 성숙해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사역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을 이끄신 성령님의 가장 강력한 속성은 바로 아버지의 마음, 곧 사랑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모든 은사는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히 남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은 결국 하나님의 사랑의 흐름을 따라 움직입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보시고 긍휼히 여기셨듯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도 하나님의 자비와 극율과 사랑을 따라 우리를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단지 감정에 머물지 않고, 우리를 복음을 전하고, 치유하고, 자유케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늘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내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 곧 생명과 사랑의 본성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육신적으로는 때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실망하고, 낙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넘어서서,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본질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그 사랑의 흐름 속에서, 지금이 어떤 때인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확히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성령의 흐름과 사랑의 흐름을 따라 살아간다면, 우리는 진리 안에서, 성령의 능력 안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시험이 있습니까? 어려움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거듭난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여러분, 오늘 다시 한번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육신적인 기준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승리자로 설 수 있습니다.
이번 한 주간도 이 정체성을 붙들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이 사랑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민감하게 따라가며,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속으로
Q1. 인생에서 시험은 왜 찾아오는가?
Q2. 시험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가?
Q3. 시험과 시련, 유혹은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가?
Q4. 시험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Q5. 많은 그리스도인이 능력 있고 승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Q6. 신앙의 슬럼프나 정체기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Q7. 거듭남이란 무엇인가?
Q8. 성경이 말하는 ‘새로운 피조물’의 의미는?
Q9.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어떤 의미인가?
Q10.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Q11.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마무리
그리스도인은 시험과 시련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정체성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붙들며 살아가는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새롭게 지음 받은 존재이며, 그분의 사랑과 생명을 지닌 특별한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기준이 아닌 영의 생각으로 살아갈 때, 어떤 환경과 유혹 속에서도 능력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