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창세기 25:27~34]

27.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새로운 피조물과 장자의 축복

여러분,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에 흐르고 있는 ‘장자’와 ‘장자의 축복’, 그리고 그 은혜가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가 어떻게 역사하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내용입니다. 야곱과 에서는 형제이며 쌍둥이였습니다. 먼저 태어난 사람은 에서였고,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집요하고 집착이 강한 성격을 보인 것 같습니다.

본문에 따르면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으로 ‘들 사람’이었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기에 장막에 거주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조용하다’는 단순히 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온전하고 완벽하며 건전하고 착실하다’는 원어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야곱은 말없이 고요한 사람이라기보다, 성품이 바르고 신중하며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에서는 밖에서 사냥하며 활동적인 삶을 살았고, 야곱은 집 안에서 장막에 머물렀습니다. 아버지는 사냥을 잘하고 남자답게 밖에서 활동하는 에서를 사랑했고, 반면 어머니 리브가는 집안에서 함께하며 살림을 돕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자연스럽게 리브가는 야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야곱은 어머니에게서 음식 만드는 법까지 배웠습니다.

어느 날, 야곱이 붉은 죽을 끓이고 있었습니다. 마침 사냥을 마치고 들에서 돌아온 에서는 지칠 대로 지쳐, 성경 표현대로라면 ‘죽을 만큼 배가 고픈’ 상태였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한 에서는 야곱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끓이고 있는 그 붉은 죽을 나에게 좀 먹게 해다오.”

그때 야곱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형이 배고프니 그냥 퍼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님, 제가 죽을 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장자의 명분을 오늘 저에게 파십시오. 그 대가로 죽을 드리겠습니다.”

이 상황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형이 배고파서 죽을 달라는데, 그걸 조건으로 거래를 하는 동생이라니 말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만큼 장자의 명분을 귀하게 여겼고,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에서는 “내가 지금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라며,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다시 한 번 확실히 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에게 맹세하십시오.”

에서는 맹세했고, 그 대가로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넘겼습니다. 야곱은 떡과 팥죽을 형에게 주었고, 에서는 그것을 먹었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더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거래를 하게 됩니다. 요즘은 특히 ‘당근 거래’처럼 중고 물품을 사고파는 일이 흔해졌죠. 저도 여러 번 해봤는데, 막상 해보면 가지러 가는 것도 쉽지 않고, 파는 일도, 심지어 무료 나눔조차도 의외로 번거롭더군요. 이렇게 우리는 크고 작은 거래를 통해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아주 독특한 거래가 등장합니다. 바로 에서와 야곱 형제 간의 거래입니다. 이 사건을 히브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장자의 명분’은 단순히 아버지로부터 재산을 상속받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 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와 의미를 가진 개념입니다.

구약에서 장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베코르(בְּכוֹר)’로, ‘첫째 아들’ 또는 ‘맏아들’을 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장자의 권리에는 세 가지 중요한 특권이 있습니다. 첫째, 다른 자녀보다 더 많은 유산을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장자가 두 배의 유산을 받는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장자를 귀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저만 해도 장남이어서 많은 혜택을 누렸습니다. 부모님께서 장남을 특별히 인정해 주셨고, 저는 늘 새 옷과 새 신발을 먼저 입었습니다. 제가 쓰던 물건은 동생들에게 물려주곤 했죠. 또 명절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장자라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어른들 사이에 앉아 식사를 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남녀가 따로 앉아 밥을 먹는 문화도 있었지요.

성경에서 장자는 이렇게 두 배의 유산과 존중을 받는 지위를 누렸습니다.

둘째로, 장자는 그 가문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맡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아 계승하는 ‘언약의 계승자’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장자의 권리, 곧 장자의 축복은 단순한 가문의 지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는 원리가 있듯, 장자는 하나님의 소유로 구별된 존재입니다. 가계적으로 보면 그는 유산을 물려받는 상속자이며, 가정의 지도자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받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장자의 권리는 단순한 특권을 넘어, 삶 전체와 영적 유산에 깊이 관련된 매우 가치 있는 축복입니다.

성경 본문을 보면, 에서는 이 장자의 권리를 하찮게 여겼다고 기록합니다. 반면 야곱은 어땠습니까? 그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목을 잡고 나온 것처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늘 생각하며 그 가치를 추구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배고픈 형을 보면서도 그 순간 장자의 명분을 거래할 생각을 했겠습니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야곱은 인생과 삶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깊이 생각했고, 그것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첫째 것은 하나님의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언제나 첫째를 통해 뜻을 이루시는 것은 아닙니다. 첫 번째로 태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장자의 축복을 이어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곳곳에서 첫째가 폐해지고, 둘째가 장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인과 아벨의 경우 가인이 장자였지만 믿음의 계보는 아벨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또 아브라함의 아들들 가운데 이스마엘이 장자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둘째인 이삭에게 주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서와 야곱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에서가 초태생 장자였지만, 장자의 축복권은 야곱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성경 전반에서 반복됩니다. 첫째가 폐해지고, 둘째가 장자의 축복과 명분을 이어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은 첫 번째 사람을 ‘아담’이라고 부릅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타락했지만, 두 번째 사람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된 장자가 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셨습니다.

이처럼 성경의 역사는 ‘첫째가 폐하고 둘째가 장자가 되는’ 영적 흐름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야곱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깊이 묵상하고, 그 가치를 알고 사모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형이 돌아올 시간을 알고 일부러 팥죽을 끓였는지도 모릅니다. 본래 이름의 뜻처럼 ‘속이는 자’라는 면모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야곱이 장자의 명분이 무엇인지, 그 의미와 가치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장자의 명분은 단순한 상속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특권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계승하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고픈 형이 팥죽을 달라고 했을 때, 야곱은 그 한 그릇을 조건으로 장자의 명분을 요구했고, 결국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야곱이 사업을 했다면 꽤 성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에서는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깊이 묵상하거나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나라,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묵상하고, 그 마음을 어디에 둘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중요한 것을 중요한 줄 모르고 가볍게 여기다가, 에서처럼 그것을 헐값에 내어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둘째로 태어났음에도, 장자의 명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을 사모했기에 끝내 형과의 거래를 통해 그것을 손에 넣었습니다.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과 삶에서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것을 가볍게 여기는 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취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장자의 명분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참된 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은 로마서 8장 29절에서 예수님을 “많은 형제 중에 맏아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 이유는, 예수님이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분명히 ‘장자’라고 표현합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히브리서 1장 2절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즉, 예수님은 만유의 상속자이시며,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분이자 참된 맏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성경은 그분을 ‘둘째 사람’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첫째 사람 아담과 대비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장자의 권리를 지니시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우리와 나누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3절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를 언급합니다. 이는 하늘 예루살렘,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또 로마서 8장 1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우리는 곧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입니다. 그분의 영광을 함께 누리기 위해, 우리는 또한 그분의 고난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은 성경 전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둘째 아담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장자로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의 속죄와 죽으심, 그리고 부활을 통해 그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있었음을 성경은 ‘동일시’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우리도 함께 달렸고, 예수님이 죽으실 때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장사되실 때 우리도 함께 장사되었고,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실 때 우리도 함께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하늘 보좌에 앉으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분과 연합할 때, 그 은혜가 우리 안에 이루어집니다. 결국 장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 장자의 축복을 함께 누리는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장자의 명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자의 축복은 서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유업을 이어받는 상속자의 권리입니다. 성경은 장자가 다른 자녀보다 두 배의 유산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가문의 영적 지도자로서,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계승하는 자의 역할을 맡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났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고,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가진 자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 사람, 곧 종에서 왕이 되고, 종에서 아들이 되며, 잃었던 권세를 되찾아 자녀의 권세를 가진 자로 서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고, 하늘의 상속자로 세움을 받았다고 증언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우리가 누리는 장자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장자는 아버지의 유산을 받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떤 유산을 받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늘의 ‘재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자체를 상속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 나라에 속한 자이며, 그 나라의 상속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유산은 바로 복음 안에 나타난 은혜입니다. 복음에는 무엇이 나타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유업으로 받았다는 것은, 그분의 의를 선물로 받았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곧 하나님 자신의 생명을 부여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다시 한 번 선언해 봅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이 의와 생명은 이 땅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장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분의 것을 온전히 유산으로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본성 곧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신성한 성품’이라고 표현하며, 원어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성’을 뜻합니다.

원래 우리는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심판과 진노의 자리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옴으로써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것들을 상속해 주셨습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복음의 은혜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납니다. 우리의 의로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의는 순간순간 무너지고 변합니다. 아무리 좋은 행위라도 그것으로 의로움을 세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선물로 받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롭게 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를 받아야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소유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친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까? 구약에서 모세조차 하나님의 얼굴을 잠시 스쳐 본 뒤, 그 얼굴에서 빛이 나 백성들이 두려워하며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 반사된 빛조차 사람들이 감당하지 못해 모세는 수건으로 얼굴을 가려야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인간은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의로 인해 우리는 그 영광 앞에 담대히 설 수 있는 은혜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모든 유산을 물려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원수 마귀를 이긴 자이며,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복의 근원’의 축복을 이어받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지금도 하나님의 복과 은혜가 흘러가는 통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복과 은혜가 천국에서만 필요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아, 세상의 빛으로서 하나님을 대표하고 드러내는 자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도 우리 안에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에 여유를 가지십시오.

가끔 유튜브를 보면, 성공한 청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청년이 말하길, 부유한 친구들과 자신 사이에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여유로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았고, 작은 문제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천 원 한 장 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중요한 것을 선택하고,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늘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기분과 결정을 좌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얼굴을 펴시고 마음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을 받은 자입니다. 하늘에 속한 놀라운 것들을 상속받은 상속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속에 당연히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간단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땅에서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다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통장에 10억 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언제든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이 10억 원 있다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작은 지출을 두고 고민하거나, 베풀지 못해 망설이는 대신, 넉넉한 마음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돈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큰 은혜를 받은 자입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은 자입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도 크고 넉넉한 여유를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 곧 장자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았다는 뜻입니다. 그 유업은 우리가 장차 들어갈 영원한 나라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처럼 이 땅에서 차지할 기업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선물로 받았지만,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했던 것처럼, 우리도 받은 유업을 현실 속에서 누리고 확장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그 나라를 소유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유업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에 가기 전,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삶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확장해 가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소유한 상속자입니다.

바울이 “만물은 다 너희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근거 없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셨고, 맡기셨기 때문에 우리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믿음과 상속자의 위치를 마음에 새기고, 너무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작은 일에 연연하며 마음 졸이지 말고, 하늘에 속한 장자의 명분과 하늘의 유업을 상속받은 자다운 여유를 가지십시오. 그 믿음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나타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장자는 가문의 영적 지도자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영적인 권세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권세와 자녀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장자가 되었다는 것은 다스리고 지도할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두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든, 영적인 영역이든, 삶의 문제든,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이 권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이 주신 그 위치에서 말하고 명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복잡한 문제, 도전, 질병, 관계의 갈등 등, 권세가 필요한 모든 영역에 예수 이름의 권세를 선포하십시오. 잘라낼 것은 잘라내고, 풀어야 할 것은 풀어내십시오. 성경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메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풀어내는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내가 누구인지를 잊지 마십시오. 나는 장자의 명분과 축복을 가진 자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영적 지도자로서의 권한과 권세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이라 부릅니다. 왕은 말로 다스립니다. 권세 있는 말을 선포하여 다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전긍긍하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내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지 알고 예수 이름으로 선언하고 선포하십시오. 그럴 때 영 안에서 묶인 것이 풀리고, 세워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큰 산아,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라는 말씀처럼, 예수 이름 앞에 귀신들도 벌벌 떱니다.

모든 상황에는 영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혼미하게 만드는 것, 괴롭게 하는 것, 빼앗는 것—이 모든 것에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필요한 곳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예수님과 함께 장자의 축복과 유업을 받은 자로서 나아가, 예수 이름으로 축복하고, 풀고, 잘라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장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계승하는 자입니다. 이는 우리도 그 언약, 곧 새 언약을 붙들고 이루어 나갈 사명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언약을 계승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이며,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대표자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명령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우리는 이 약속을 이어받은 자들입니다.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이유도 바로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약속의 계승자로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자로서, 이 복음의 은혜를 담대하게 드러내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이들에게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하시고, 필요한 곳에서 손을 얹어 기도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이 그들의 삶 속에 드러나고,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을 대표하는 대표자로 세상 속에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나는 그 약속을 이어받은 자이며, 이것이 바로 장자의 축복을 받은 자의 위치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그 은혜를 따라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에서가 겪었던 것처럼, 우리가 가진 장자의 명분을 빼앗으려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생각과 마음 속에서 그 귀한 것을 잃어버리게 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야곱과 같은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에서는 그 가치를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마 야곱은 어머니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축복은 장자를 통해 이어졌고, 아버지의 축복 기도를 통해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시대에 흐르고 있는 장자의 명분과 장자의 축복이 무엇인지, 내가 장자로 세워져 어떤 것을 소유하게 되었는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사모하며 결코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붙잡는 자가 되십시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계 3:11) 우리가 가진 축복권과 장자의 명분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위대한 부르심을 향한 삶의 근거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이 장자의 권리와 명분은 결코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핏값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것을 귀하게 여기고, 깊이 묵상하며, 그 믿음의 자리에 굳게 서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나타나고, 여러분이 있는 자리마다 예수님이 필요한 곳에 그 은혜가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눔 질문

1) 말씀 나눔

  •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사모한 마음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입니까?
  • 예수님 안에서 내가 받은 장자의 축복은 어떤 의미입니까?

2) 삶의 적용

  • 내가 최근에 영원한 가치보다 당장의 편안함을 선택했던 순간이 있었나요?
  • 직장•가정•교회에서 장자의 권세(대표.상속자 언약 계승자)로 살아가는 모습은 무엇일까요?
  • ‘나는 하나님의 장자다’라는 정체성이 오늘 내 삶의 선택을 어떻게 바꿀까요?

3) 이번 주 실천

  • 매일 선포: “나는 하나님의 장자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백기도집 활용) 한 주간, 영원한 가치를 우선하는 선택을 구체적으로 1번 이상 실천하기.

 

함께 기도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장자의 축복을 깊이 깨닫게 하소서.
  • 세상의 ‘팥죽 한 그릇’ 유혹을 이기고, 영원한 유업을 붙잡게 하소서.
  • 새로운 피조물답게, 가정·직장•교회에서 하나님의 대표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