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순응할 것인가 변화할 것인가
우리가 은혜를 생각할 때에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선택했고, 내가 먼저 하나님을 좋아했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선택하셨고 그분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고,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고 자유롭게 하시고 축복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그 은혜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신의 핏값과 자신의 이 목숨 값을 대신하여 우리를 향한 모든 저주를 담당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에 속한 모든 저주를 대신 갚으셨고, 그리고 또한 그것이 해방되었다는 온전히 이루어졌다는 확증을 위해서 그분은 죽음 가운데서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입니다.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안에 이루어졌고,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는 것은 바로 그 은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이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함께 죽임을 당했고, 함께 장사되었고, 그리고 예수님이 일으키심을 받을 때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하늘에 앉히실 때에 우리 또한 함께 하늘에 앉았다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이 놀라운 뜻들이 우리 안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늘 이것을 묵상하고 생각하고 기억해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 나를 위해서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이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는 먼저 생각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고, 예수님께서 왜 죽으셨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 은혜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으로 거듭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혜가 저와 여러분 안에 이루어진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늘 묵상하고 늘 생각해 봐야 됩니다. 예수님의 이 성냥과 부활을 통해서 내게 이루어진 일, 인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이 있다면 하나님이신 그분이 이 땅에 오신 사건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잖아요. 온 인류를 창조하신 창조주 아버지와 하나 되신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님.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2천 년 전에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건 아닙니까? 그분이 오셔서 무얼 하고 가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가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고 자유롭게 하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죄가 되셔서 십자가의 저주를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알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늘 거듭난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위대한 일을 이 위대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정말 깊이 있게 묵상을 해봐야 됩니다. 얼마나 위대한 일이 일어났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으셨고, 그리고 다시금 부활하셨다는 이 놀라운 사건. 이 위대한 일에 우리는 초점을 맞춰야 됩니다.
도대체 왜 이 땅에 와서 그 일을 하셨는가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결과가 무엇인가. 그것이 바로 복음 아닙니까? 그 일들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걸작품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지음을 받았잖아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에 대한 결과, 그것이 바로 복음, 기쁨의 소식입니다.
그 은혜가 저와 여러분 안에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우리는 그 일에 대해서 늘 생각해야 되고 기억해야 됩니다. 기억하지 않으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심으로 나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일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결과가 바로 새로운 피조물인 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의 가치, 나의 존재가 얼마나 존귀하고 귀하고 아름다운지 우리는 그 은혜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평가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평가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가받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의 말씀이 우리를 어떻게 정의하시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세상의 평가와 환경, 사람들의 생각과 판단에 중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 나의 존귀함과 거룩함, 가치 있는 존재로서의 소중함을 경히 여길 때가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우리 자신을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오직 나를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할 때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기억할 때 은혜의 풍성함이 우리 안에 가득해집니다. 우리는 그러한 자로 거듭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삶의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삶에서 변화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지금 이대로가 좋으십니까? 혹은 변화하는 것이 두려우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고, 질병에서 자유롭고 싶어 합니다. 어떤 이는 늘 “나는 종합병원이야”라는 말까지 하며 몸의 약함을 토로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두려움 때문에, 어떤 이는 중독 때문에 고통당합니다. 이런 문제 속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노력과 수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만 얻을 수 있는 변화가 아니라, 은혜로 주어지는 변화가 있다고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은혜를 조금 더 살펴보며 믿음 안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환경이 바뀌길 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바깥의 변화는 내면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고요. 모든 변화는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드릴 영적인 예배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산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두 단어가 있습니다. ‘본받다’와 ‘변화’입니다.
‘본받다’는 헬라어로 ‘휘스케마티조’, 곧 ‘순응하다’라는 단어에서 왔습니다. 겉모습을 따라가고 세상의 모양을 따라가는 것을 뜻합니다. 즉, 세상의 가치와 흐름에 동화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반면 ‘변화’는 ‘메타몰포오’, 곧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합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바뀌듯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이 세대에 순응하지 말라고요. 순응한다는 것은 세상처럼 생각하고, 세상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면서도 사고방식은 여전히 세상적이라면 그것이 바로 세상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세상 사람들처럼 두려워하고 염려한다면 그것은 순응하는 것입니다. 도전 앞에서 불평하고 원망하며 두려워한다면 그것도 순응입니다. 성경은 “거기에 순응하지 말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라”라고 말씀합니다. 애벌레로 머물지 말고 나비로 변하라는 것입니다.즉,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하고 다르게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근본적인 변화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이미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 있었습니다. 성경이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우리가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미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옛사람, 저주 아래 있던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었으며, 이제는 하나님의 생명과 의를 가진 새로운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 일어난 실제적인 변화입니다. 우리의 속사람 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이제는 그다음 단계, 마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마음이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애벌레처럼 머물지 말고 나비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변화가 영 안에서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혼, 곧 마음과 생각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순응하지 말고 변화되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내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속사람은 이미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상처, 실패, 과거의 아픔 속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치유받고 회복되고 존귀한 자로 바뀌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의 삶의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위해 우리를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짜 변화는 내면의 변화입니다. 그 변화는 생각을 새롭게 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잠언 23장 7절에 “무릇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의 사람됨도 그러하니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마음의 생각이 그 사람 자체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곧 우리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로마서 8장 6절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적인 생각, 곧 세상에 순응하는 사고방식은 결국 사망을 가져옵니다. 반면 영의 생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평안을 줍니다. 따라서 현재 우리의 삶은 곧 우리의 생각의 결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 속에서 반복되는 문제와 실패 속에 “나는 운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되는 일이 없다”, “이건 내 운명이다”라고 체념하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늘 경험 속에서 안 되는 것만 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잘 되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여기고,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자존감이 낮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안 되는 것만 보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삼으면서 늘 그 수준에 머무르게 됩니다.
영화 ‘오두막’을 아십니까? 그 책이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주인공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고, 딸을 잃는 아픔까지 겪으며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회복의 여정을 걷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이 인격적으로 다가와 주인공을 치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정원’의 비유였습니다. 정원에는 온갖 잡초가 무분별하게 자라나 있었습니다.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죠.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과 같습니다. 무엇을 심었느냐에 따라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잡초를 심으면 잡초가 자라듯,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가 삶을 결정합니다.
영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주인공의 마음의 정원을 치유하십니다. 잡초를 뽑아내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이 장면은 마음의 회복을 상징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처와 아픔, 과거의 잘못된 경험이 계속 심겨져 있다면, 우리는 그 생각에 따라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변화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 안에 근본적인 변화를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은혜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정원에 무엇을 심을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잡초 대신 좋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마음으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세상적이고 하나님 말씀에 반하는 생각이 들어올 때, 그것을 거절해야 합니다. 대신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정원은 지금 어떠합니까? 혹시 잡초가 무성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뽑아내고, 선하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로 채우십시오. 생명을 주는 것을 심어야 합니다. 사망과 절망으로 이끄는 것은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거듭날 때 이미 모든 것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마음의 변화가 삶의 결과를 결정짓습니다. 여러분, 진정 변화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마음의 정원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으십시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마음에서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은 이미 거듭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마음에서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한 관건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안에 이미 주어진 선한 것을 풀어내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무언가를 새로 얻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내면으로부터 흘려보내는 과정입니다. 우리의 영은 거듭날 때 완전하게 되었지만, 문제는 혼, 곧 생각과 감정, 의지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속사람인 영과 혼이 말씀 안에서 일치할 때, 영 안에 있는 선한 것들이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 능력이 막히게 됩니다. 따라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2~3절은 말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즉,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아는 것입니다. 이 지식에서 은혜와 평강이 흘러나옵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그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행동하는 믿음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아람 군대에게 둘러싸인 사마리아가 있었습니다.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심지어 아이를 잡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성문 밖에 있던 네 명의 문둥병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했습니다.
“여기서 그대로 있으면 굶어 죽는다. 차라리 아람 군대로 가자. 가서 죽을 수도 있지만 혹시 밥이라도 얻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그들의 작은 발걸음을 아람 군대는 큰 군대의 진동 소리로 듣게 되었습니다. 결국 아람 군대는 혼비백산하여 도망쳤고, 성 안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변화는 행동할 때 일어납니다. 주저앉아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행동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이미 생명의 우물이 있어도, 그 물을 떠서 마시지 않으면 목마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치유와 회복, 축복과 생명이 이미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풀어내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십시오. 그 말씀을 마음의 정원에 씨앗처럼 심으십시오. 잡초는 뽑아내고, 좋은 씨앗만 심으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납니다.
빌레몬서 1장 6절은 말합니다.
“너희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인식함으로 효과 있게 하려 함이라.”
즉, 말씀을 인식할 때 그것이 삶에서 효과를 나타냅니다.
아람 군대 앞에 나아갔던 네 명의 문둥병자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디디면 하나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그 말씀은 살아 있으며, 반드시 우리 안에 역사합니다. 말씀은 우리로 꿈꾸게 하고, 바라보게 하며, 믿음을 주어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에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말씀으로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합니다. 변화와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말씀을 심고 행동하는 믿음으로 응답할 때, 우리의 삶은 반드시 변화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나눔 질문
- 내가 자주 세상에 순응하는 영역은 무엇인가요?
- 내 안에 이미 주신 하나님의 선한 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믿고 있나요?
- 이번 주, 내 생각을 말씀으로 새롭게 하기 위해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 내 삶에서 받은 것을 풀어내는 믿음의 고백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함께 기도
주님, 세상에 순응하지 않고 말씀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이미 제 안에 주신 은혜와 능력을 믿고 풀어내는 삶을 살게 하소서.
말씀 묵상을 통해 내 혼이 새로워지고, 영의 충만함이 드러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