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고린도전서 1:26~31]
26.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30.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31.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 정보들 중에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우리는 오감을 통해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것을 듣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느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감정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최근 대선에서 국민의 절반은 민주당에 투표했고, 나머지 절반은 보수에 투표했습니다. 여론이 양분된 것입니다. 하지만 양측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좋아합니다.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도 어떤 편에서는 좋아하고 기뻐하는 반면, 다른 편에서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미워하고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러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에 감정이 동요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입니다. 누가 되었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권력자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위해 축복하고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지했던 사람이 당선되었든, 지지하지 않았던 사람이 당선되었든, 우리는 국가 권력자들과 유정자들을 위해 진심으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역사하셔서 더 좋은 방향으로 합력하여 성을 이루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며 살아가면서 감정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걱정, 염려, 근심에 빠지기도 하고, 우울감이나 상실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것을 해석하고 받아들이기보다는, 항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시선과 마음을 받아들이고 해석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기쁨, 평안함을 통해 더욱 발전된 삶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바라보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이 있지만, 대부분 세상적인 기준에 따라 그 모습이 형성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좋은 학벌과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지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평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적 기준은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요? 물론 세상적 기준을 기준으로 볼 때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대부분은 그 기준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위축당하고 때로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본문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사람들, 뛰어난 웅변 실력을 가진 철학자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삶의 방식 등을 보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음이 위축되고 세상적인 기준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다툼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에서 주시는 단순하면서도 탁월한 은혜를 인정하기보다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였기에, 그들의 마음은 더욱 굳어지고 다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들이 눈을 들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바라보라.”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다시 한번 묵상해 보기를 바랍니다.
26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세상적인 기준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형제들아 너희의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즉 육신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으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 자랑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비하하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 알고 계시며, 그러한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고 사람을 평가하며 우리 자신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인 관점에서 자랑할 만한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탁월한 사람, 출신 성분이 좋은 사람, 물질이 풍족한 사람, 성공한 사람 등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선택하셨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의 부르심을 보십시오. 결국 지혜롭고 미련하고 능력 없고 특별하지 않은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연약하고 부족하고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선택하시는 전적인 은혜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런데 다윗 이전에 처음 세워졌던 왕은 누구입니까? 사울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셨지만 사실 사람들이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용모가 굉장히 키도 훤칠하고 외모적으로 보면 정말 왕으로서의 기품이 그대로 표현된 것처럼 멋지게 생겼고 키도 크니 정말 이스라엘 왕을 대표할 만한 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백성들은 환호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사무엘상 16장 10절 말씀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모에게 이르시되 그의 음모와 피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그래서 사무엘이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을 자에게 기름 붓기 위해서 다윗의 집에 가게 됩니다. 그때 장남 엘리압을 봅니다. 사울 왕처럼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이라고 생각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아들, 세 번째 아들, 모든 아들이 왔는데 모두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이제 묻습니다.
“아들 또 없습니까?”
“예, 하나가 있긴 한데 참 나이도 어리고 별 볼 일 없습니다.”
현재 양들을 돌보는 다윗을 보며, 그의 아버지는 외모적인 조건 때문에 그를 왕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시고 “이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겉모습을 보지만, 나는 중심을 본다. 그의 용모와 피를 보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겉모습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키, 용모, 학벌을 보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세상적인 사람들이 바라보는 기준을 가지고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기준과는 반대되는 것, 즉 연약하고 미련하고 어리석고 능력 없고 부족하고 좋은 학벌과 좋은 가문, 문벌 등을 타고나지 않은, 남들이 인정하지 않는 모습일 때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바라볼 때 어떤 모습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있습니까? 세상적인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마음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세상적인 기준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때면 마음이 위축되고 상실감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혹시 우리 자신을 각자의 고유한 존재로 바라볼 때, 세상적인 기준만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타인의 성공 기준, 재산, 학력에 얽매여 자신을 평가하고 있지는 않으신지요? 월급으로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것은 아닌지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각자를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의 모습입니다. 형제 자매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문 27절과 28절에는 하나님께서 약한 자와 없는 자를 들어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에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세상에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하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을 폐하려 하시나니 할렐루야 여기에 보니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볼 때는 미련하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지혜롭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약하고, 세상적으로 볼 때는 천해 보이고 때로는 멸시받고 때로는 없어 보이는 그들을 택하사 지혜롭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탁월하게 하셔서 세상의 기준으로 높여져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놀라운 역전, 바로 반전의 은혜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모세를 잘 아실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국에서 자라게 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세는 성인이 되었을 때 왕자로서 자라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군지 조금 깨닫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애굽 군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모습을 보면서 모세는 그곳에서 살인죄를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자 두려움에 사로잡힌 모세는 왕궁을 떠나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애굽의 왕자로 자랐을 때 세상적으로 모세는 어떠했을까요? 왕자로서의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힘도 있고 능력도 있고 굉장히 탁월했을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모습으로 자신의 백성이 핍박받는 것을 보았을 때 의로운 마음이 들어 결국 핍박했던 군인을 힘으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광야로 도망친 이후 모세의 나이가 40세가 지나 80살이 되었을 때 드디어 그를 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낼 리더, 구원자로 삼으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모세를 만나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4장 10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이제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시니 내가 가서 애굽 왕을 만나고 내 백성을 꺼내라 하셨으나 저는 본래 말을 잘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님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저는 여전히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옛날에 모세 같았으면 어땠을까요? 40대의 모세라면 주님께서 저를 아시기에 당당하게 응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40년의 삶을 살고 난 이 모세의 대답은 솔직한 마음입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 사정과 형편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 모습과 인생을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제 힘으로 무언가를 해보려다가 두려워 도망쳐 광야에서 40년 동안 숨어 살면서 양들을 치고 있는 제 모습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둡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사람의 입을 쥐었느냐? 누가 말 못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내가 그러한 능력이 있지 아니하냐? 네가 말 못한다고 너를 하게 말을 잘하게 할 수 있는 자가 누구냐? 나다.”
그러면서 12절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라. 내가 내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랬더니 모세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3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주여 인내할 만한 자를 보내소서”
모세는 육신적으로 볼 때는 완전히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설득을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내 입과 함께 있어서 너 할 말을 가르치리라. 네가 말 잘하게 하는 것도 나로부터 시작되고 모든 능력이 나에게부터 시작되니 너는 가라. 그러면 내가 가르쳐 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주여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어찌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에 합당한 자를 보내소서. 제가 이렇게 부족하고 연약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를 보내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못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가 제가 볼 때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이제 됐다라고 할 때가 아니겠습니까? 모세는 왕자로서, 왕궁에서 40년을 살며 엘리트 의식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모세의 모든 것을 비우시고 사용하셨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보소서, 나를 보내소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출애굽시키시고, 그분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구원자이자 리더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강한 자가 아니라 약한 자, 부족한 자, 어리석은 자, 미련한 자를 선택하셔서 세상 가운데 그분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우리 또한 지혜롭지 못하고 육신적으로 탁월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통해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D.L. 무디 목사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구두 수선공이었지만,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는 데 큰 역할을 한 부흥의 주역이었습니다. 무디 목사님께서는 부족한 출신 성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미국과 영국의 복음 부흥에 크게 기여하신 분입니다. 무디 목사님께서는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히 헌신한 사람이란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내어 드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을 알고, 그 부르심에 순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부족할 때,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연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강함과 능력을 나타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과 믿음의 간증을 통해 이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때로는 자신이 약하고 부족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실 때라는 사실을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약함 때문에 실망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약함을 사용하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많이 깨닫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은 삶의 곳곳에서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사람을 대면하는 부분에서 약한 사람도 있고, 삶의 모든 구조 속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다고 해서 실패하거나 무능력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고 오히려 그 은혜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붙잡는다면, 우리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약하다고 생각하고 우리의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약함을 사용하시고 사용하실 수 있으며, 실제로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29절 말씀에 보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하나님의 뜻은 육신적인 자랑을 없애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학벌, 경력, 성공, 집안 배경, 의로움, 의로운 행위 등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러한 육신적인 자랑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적인 자랑을 없애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일하심과 영광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빌립보서 3장에 이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등장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며 전통적으로 히브리인이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즉,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신의 위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학문적으로는 가말리엘의 제자였기에 엘리트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3장 8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육신적인 신분, 학벌, 전통 등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고 귀하기 때문에 그것을 얻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할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뿐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인지 질문합니다.
육신적으로 자랑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무엇이 가장 귀한지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며, 그리스도의 나타남을 통해 오늘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십니다. 그리고 그 영화로움은 결국 우리 자신이 높여지고 존귀함을 얻는 은혜의 결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주 앞에 내어놓았을 때 그분의 일하심과 은혜를 통해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으로 드러나며, 우리가 그 존귀함과 영광의 자리에 함께 서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자랑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을 사용하시는 오늘 그분의 은혜가 나타날 때 이것이 또 자랑하는 것이고, 이것을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을까요? 3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하나님 앞에서 육신적으로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너희의 부르심을 바라보라. 너희의 정체성은 바로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성분, 우리의 출신을 육신적으로 보지 말고, 세상적 기준으로 보지 말고 “너희의 부르심을 바라보되 너희가 어디로부터 났는지를 알아라.”라고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세상적, 육신적 기준으로 우리 자신을 판단하고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바라보며 계속해서 붙잡는 은혜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적으로는 어떨지 모르지만,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구원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울타리 안으로 우리가 들어와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는 놀라운 하나님의 울타리가 있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지만,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그 울타리가 쳐져 있습니다. 마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보호막과 같습니다. 어떤 공격도 막아내는 방어막 말입니다.
우리는 그 보호막 아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창조주 그리스도, 그분의 기름 부으심 안에, 울타리 안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공격도 그 울타리를 뚫지 못합니다. 그 안에는 보호와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와 축복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우리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 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우리의 이 부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붙잡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이 말하는 완전한 자입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 부족하고 연약합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당신은 완전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출발은 그분이 우리를 건져내어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완전함이 밖으로 드러나고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지혜와 능력이 우리 안에 이미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그것을 얻으려고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미 주신,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부어주신 그 은혜가 우리 삶으로 발전되고 풀어지고 나타나고 보여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은혜가 있음을 알고 그 은혜를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과거가 아닌 예수님의 은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새 생명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 것이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5절 말씀입니다.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것만이 중요합니다.”
할례와 무할례는 육신적인 행위나 기준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새롭게 지으심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되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떤 기준으로 규정하시는지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가치를 얼마나 인정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그 은혜를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31절에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찬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었거나 무엇을 소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육신적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새롭게 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명철을 주시고 구원하심을 베푸시는 하나님,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셔서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은혜, 이것이 우리가 자랑할 것이 아닙니까? 우리의 연약함은 결국 그분의 지혜로움과 강함이 나타나기 때문에 자랑할 만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상황이나 형편에 있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약함, 부족함, 평범함, 보잘것없음은 세상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그 약함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기준입니다.
한 주간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 안에 살고 있는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지혜, 의로움, 거룩함, 구원함, 이 모든 것이 오늘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주님만을 자랑하는 한 주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 속으로
Q1.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사람을 향한 것입니까?
Q2.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신 기준은 무엇입니까?
Q3. 모세는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까?
Q4. 하나님께서 약한 자를 선택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Q5. 바울은 자신의 과거와 성취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Q6. 우리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습니까?
Q7.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가진 은혜는 무엇입니까?
Q8. 우리가 자랑해야 하는 진정한 자랑은 무엇입니까?
Q9. 내가 지금 나 자신을 바라보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Q10.나는 연약함 때문에 낙심하고 있지 않습니까?
Q11.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마무리
우리는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을 평가하며 쉽게 감정의 요동을 겪고 자격 없음을 느끼기 쉽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연약하고 미련하며 세상적으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자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만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사실에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자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 안에서 주어진 정체성과 은혜를 붙잡고, 약함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직 주 안에서 자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