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창세기 13:14~15]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는 기근의 때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성경의 사례에서처럼 심각한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했던 기근의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먹이시고 풍성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음을 보았습니다. 가뭄으로 농사를 지어도 흉년이 되는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100배의 소득을 거두게 하시는 은혜가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고 믿고, 믿음으로 위로를 얻으며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본문의 말씀을 통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무언가를 보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수많은 것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인생이라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보다’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주제를 가지고 말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눈을 들어 나를 좀 보라”라고 말씀하시며 자기 자신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더 나아가서는 예수님에 관해서도 “예수님을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사람들이 죽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만들어 세우고 사람들에게 “장대에 달린 저 놋뱀을 바라보라. 그것을 바라보며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뱀에 물려 독사에 물려 죽어가던 사람이 장대에 달린 그 놋뱀을 바라보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되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도 광야에서 놋뱀이 장대에 달렸던 것처럼 나도 그 장대에 달려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바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무엇을 볼 때 삽니까? 맞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바라볼 때 삽니다. 예수를 바라볼 때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베드로가 바다 한가운데 배에 있는데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유령이라고 외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세상에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그것은 귀신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령이라고 외치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래도 좀 담대한 베드로를 향해 “야 베드로야 네가 가서 확인 좀 해봐. 어 니가 먼저 가 봐”라고 말하며 베드로를 밀어냈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가서 확인합니다.

“주님입니까?”

“나다”

“주님이 맞다면 저로 하여금 당신에게로 오라 하십시오.”

그러자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내게로 오라.”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이 배에서 내려 갈릴리 호숫가 바다에 발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러자 인류 최초의 기네스북에 올라갈 일이 발생했습니다. 인류 최초로 물 위를 걸은 사람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을 내딛으니 빠지지 않고 예수님 바라보니까 그대로 물 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때 바람이 휘몰아치자 깜짝 놀라서 시선을 돌려 출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갑자기 어떤 현상이 나타났습니까? 물속으로 꾸륵 빠져들어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다가가셔서 베드로의 손을 잡고 건져내 주시면서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볼 때 물 위도 걷게 되는 사건은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눈을 들어서 나를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속성과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것에 시선을 두지 말고 먼저 자신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을 얻고 조카 롯과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조카 롯의 재산도 많아지고 아브라함의 재산도 많아지자 하인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다툼이 심해지자 아브라함과 롯은 헤어져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너는 먼저 선택하라. 네가 이쪽으로 가면 나는 이쪽으로 가겠고, 네가 저쪽으로 가면 나는 반대로 가겠다.”라고 말합니다. 롯이 눈을 들어 사방을 돌아보았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좋은 땅이 있었습니다. 어느 땅은 보기에 좋아 보이는 땅이 있었고 어느 땅은 광야뿐이었습니다. 롯은 “저기 가면 굶어 죽을 것 같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쪽 봐라. 화려하고 좋은 게 저기 가면 내가 성공할 것 같아.”라고 생각했습니다. 롯이 쭉 살펴보다가 정말 좋은 땅을 보았습니다. 롯은 “나는 저쪽 가서 살 거야.”라고 말하며 그 향을 향해 떠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롯이 떠난 곳의 반대편은 좋은 땅보다는 눈으로 보기에는 좋지 못한 땅이었을 것입니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내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보여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너희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내가 지시하는 땅을 보라. 오늘 그 땅이 바로 너의 땅이 될 것이며 그 땅이 너와 내 자손에게 주는데 영원토록 이르는 그 땅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듯, 먼저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임을 기억하십시오. 창세기 1장 3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라 참 좋지? 내가 만든 이 세계를 좀 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것을 보여주시며 기뻐하십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후에도 얼마나 아름다운 창조물인지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드시고 보여주시고, 때로는 믿음의 사람들이 갈 땅을 보여주시며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여주신 그 길을 걷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도 창세기 12장 1절에서 “내가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눈을 들어 너희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과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서는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무뼈를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내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라고 말씀하시며 하늘의 별들을 보여주셨습니다. 별들을 보여주시며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무언가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구체적으로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밤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별들을 보며 아브라함은 자신의 자손이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실 때 구체적인 것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시어 가나안 땅을 약속하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하나님께서는 12명의 정탐꾼을 뽑아 그 땅을 정탐하게 하셨습니다.

정탐은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주신 가나안 땅을 먼저 보여주시는 일이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은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며 그 풍요로움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열매를 맺고 돌아와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보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악평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 땅을 차지할 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주인이 있는 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약속을 보여주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약속을 바라보고 확신해야 합니다. 12명의 정탐꾼처럼 악평을 하는 것이 아니라, 12명의 정탐꾼 중 2명처럼 그 땅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보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땅을 보니 성읍도 견고하고 그 땅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용사처럼 키가 크고 거인 같았습니다. 정말 좋은 땅이지만, 저와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판단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그곳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슬피 울면서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습니다. 땅을 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해서 여기서 죽게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제가 볼 수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하시고 자랑스럽게 보여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자신이 만든 창조물을 보며 기뻐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땅을 약속하시고 12명의 대표자를 뽑아 그 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을 보고 감탄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하지만 그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슬피 울며 땅을 치며 죽음을 한탄했습니다. 고향인 애굽에서 고깃국에 밥이라도 먹을 수 있었지만, 여기 와서 죽게 되었다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평에 매우 화가 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동안 정탐한 것만큼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시고, 그 땅에서 태어난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그 땅을 차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실 땅들을 먼저 보여주십니다. 우리는 봄을 통해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것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은 특별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의 삶을 살아가도록 보내셨습니다.

하지만 삶은 쉽지 않습니다. 직장 생활, 돈 버는 일, 사업 등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어려움으로 가득합니다. 순간순간 부딪히는 어려움과 사람과의 관계, 환경 속에서 우리는 쉽게 좌절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남들과 다르게 하나님의 뜻과 속성을 알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관점을 바꾸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은 믿음으로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은 삶의 방향을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시각은 우리의 삶의 방향을 변화시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갈렙은 어떠했습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왜 다른 사람들은 모두 똑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들을 경험했으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실 땅도 보았습니까? 그런데 10명의 사람들은 좋은 땅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악평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왜 달랐을까요? 무엇이 달랐기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른 시각을 가졌을까요?

성경은 여호수아와 갈렙에 대해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랐다”라고 말합니다. 즉, 여호수아와 갈렙은 눈으로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결과가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그저 그곳에서 원망하고 마음이 무너질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사람들을 깨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땅이 아니냐!” 아마 성경은 그렇게 표현했을 것입니다. “야, 야, 봐봐. 지금까지 여기까지 우리를 함께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느냐? 홍해를 건넜을 때를 기억하지 않느냐? 물이 없을 때 물을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느냐? 가뭄의 때에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느냐?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그 하나님께서 이 아름다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약속하셨고, 그 땅을 보여주셨는데, 왜 여기서 무너져 있느냐? 왜 마음이 무너져 있느냐? 일어나자! 일어나서 가자! 우리는 그 말씀을 믿고 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마음이 무너져 그곳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기에 기뻐할 수 있었고 이미 그것을 소유한 자가 되었습니다. 결국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로 보았기에 오늘 그것을 바라보았고, 그것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심으로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십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특히 갈렙에 대해 기록된 말씀을 보면,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음이 달랐다고 표현합니다. 원어적으로 그의 마음은 그의 영을 의미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달랐고, 그 영이 달랐던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비전을 주시고 새로운 눈을 열어 보게 하십니다. 이사야서 32장 15절 말씀을 보면, “위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면 광야가 밭으로 바뀌고 아름다운 밭이 숲으로 여겨지는 일이 일어난다고 말씀합니다. 똑같은 광야인데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바라보는 시야가 바뀌어 광야가 밭으로 보이고 그 밭이 숲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말씀이십니까? 실제로 그러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보여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 영으로 말미암아 지금 보여지는 땅이 광야와 같을지라도 그 광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도록 하십니다. 밭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밭은 열매를 내는 것입니다. 광야는 무엇도 낼 것이 없습니다. 물도 없고 마른 땅인데 그 땅이 밭이 되고 밭이 되면 열매가 나타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밭이 숲이 됩니다. 숲이 되면 수많은 동물들이 그 안에 머물러 살고 숲에서 내는 수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결국 광야와 같은 곳이 무엇으로 바뀌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비전 눈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변화의 시작이며 그것을 가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요엘서 2장 2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하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게 되는데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면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까지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들의 시선과 비전이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 담대해졌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로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비전을 보여주시고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십니다. 무엇을 바라보고 계십니까? 바라보는 사람은 그것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알리바바의 마윈은 인터넷 시대가 없던 시절, 인터넷 전자상거래 활성화 가능성을 예견하고 투자를 했습니다. 그 결과 엄청난 시장이 열렸습니다. 어느 성도님의 이야길 하고 싶습니다. 그분께서는 자동차, 화물차, 특장차 매매 사업을 하셨습니다. 인터넷 활성화 이전, 이러한 매매가 인터넷 시장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화물차 매매 사이트를 개발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그분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는 성공적인 사업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국내 최대 사이트가 되었습니다. 수많은 대기업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시도하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판매가 되지 않는 이유는 특장차의 매매는 그분께서 만드신 사이트 외에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허도 공개하셨고, 당시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바라보았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 일을 통해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사실 우리 자신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스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것에 빠져 있다면 절대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성도님은 인생을 바꾸고 싶었고, 과거의 삶을 청산하고 이 일에 성공하고자 했습니다. 첫 번째 성공의 목적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자신감, 그리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던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자격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먼저 바라봐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지 못한다면 절대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용사들은 가나안 땅을 보고 메뚜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잘것없다고 여겼고,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주눅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 땅을 주셨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비록 상대가 거인이라 할지라도 이미 승리자임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묵상하고 되새겨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이전의 실패, 과거의 연약함, 부족함, 무력함은 모두 지나갔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새로운 시작, 새로운 출발, 새 것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이전의 생각과 사고 방식으로는 새 시대를 열 수 없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과거의 경험, 생각, 아픔, 상처에 사로잡혀서는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자격 없는 자로 여기게 하고 스스로를 가두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창조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과거는 이제 끝났고, 여러분은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사람처럼 생각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십시오. 할렐루야,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과거에 너무 매달리지 마십시오. 새로운 사람처럼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이 어떤 존재인지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 아닙니까?

하나님의 생명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오늘 모든 어둠의 권세를 이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자로 더 나아가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왕 같은 제사장, 정말 하나님께서 놀라운 자격 있는 자, 복된 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자, 정말 신분이 바뀌어진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의 아픔에 매여서 스스로를 옥죄지 마십시오. 이제 날마다 생각하십시오. “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창조물이다. 나는 예수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 나는 새 사람이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함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가득 채워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믿고 선포하고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여러분의 미래를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선한 일을 위해서 디자인했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디자인을 할 때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그렇게 디자인하고 만드셨을 때, 우리를 통해 나타내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영광과 은혜가 있음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어려움을 겪고 막히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그것을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아름다운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합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주시고 계십니다. 마치 아브라함에게 “눈 들어 보라”라고 말씀하시며 약속의 땅을 보여주시듯, 우리 인생의 길을 인도하시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성을 듣기 위해, 그 뜻을 분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그 뜻을 분별하려고 한다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그림,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그림을 붙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마치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처럼, 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터널을 지나면 새로운 아름다운 세계,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집니다. 우리가 지나가는 이 길이 비록 터널 같고 암흑처럼 느껴지더라도, 실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그 너머에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준비하신 아름다운 땅이 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을 바라보았고, 갈렙은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지으신 우리 자신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 그것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키고, 이 어둠의 때와 어려운 시간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일들을 은혜 안에서 마음껏 누리며, 그 영광을 나타내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 속으로

Q1. 성경에서 ‘보라’는 주제는 왜 중요합니까?

 

Q2. 광야에서 놋뱀 사건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Q3.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Q4. 아브라함과 롯의 땅 선택에서 드러나는 영적 교훈은 무엇입니까?

 

Q5.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까?

 

Q6. 가나안 정탐 사건에서 12명의 정탐꾼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Q7. 여호수아와 갈렙은 왜 다른 시각을 가졌습니까?

 

Q8.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우리의 시각은 어떻게 바뀝니까?

 

Q9.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Q10. 우리는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가야 합니까?

 

마무리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의 눈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과 열매가 달라진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실에 눌리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우리는 과거의 상처와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같은 현실도 달리 보이고, 광야도 풍성한 밭으로, 밭은 숲으로 변화되는 은혜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의 중심을 바꾸어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