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야고보서 1:22~25]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
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곧 그 말씀을 듣고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고 말합니다. 교제나 전도, 말씀을 나누다 보면 “저 말씀 많이 공부했어요.”, “성경 공부 많이 했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유튜브와 같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말씀을 찾아보기도 하고, 유명 성경 교사들의 강론을 듣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분들이 말씀에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알고, 성경을 공부하고 읽고, 배우고 묵상하고 암송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 말씀을 믿는 것과 더 나아가 그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능력 있는 삶의 출발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난주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한 주 동안 그 말씀을 듣고 잊으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시선과 말씀의 눈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과 문제, 상황에 대해 바라보셨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듣고 곧 잊어버리셨습니까? 그 말씀을 잘 안다는 데에서 멈추셨습니까?

진짜 능력 있는 삶은 말씀을 듣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결국 안다는 것은 그 말씀대로 반응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능력 있는 삶, 더 나아가 변화되는 삶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 1장 22절에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믿는다면 반드시 그에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말씀은 단순히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생명이며, 나아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야고보서 1장 18절은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하나님을 보여주고, 곧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을 드러냅니다. 또한, 이 복음의 말씀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말씀은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수준을 넘어섭니다. 말씀 자체가 생명이시며, 말씀 자체가 하나님이시며, 말씀 자체가 결국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 자신, 즉 우리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는 우리가 어떻게 태어났는지에 대해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라고 정확하게 말씀합니다.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것, 우리가 시작된 것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가 태어났고, 우리가 시작되었으며, 우리의 정체성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으로 거듭난 것이 아니라, 이 복음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났습니다. 우리의 뿌리와 시작은 말씀에 있습니다. 과거의 옛 사람은 옛 본성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은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썩어질 씨가 아니라 썩지 아니할 씨, 즉 살아 있고 항상 있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음을 확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가 아니라, 우리의 본질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거울이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계시합니다.

이 복음의 말씀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어떻게 신분이 바뀌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존재로 여김을 받고 있는지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먼저,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너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야.”라는 말씀은 우리가 최고의 사랑을 받았고 영원토록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세상에 보냄을 받았지만, 세상을 이긴 승리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가난하고 잘 안 되고 저주받고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 복으로 인해 우리는 형통할 수밖에 없는 자이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승리자입니다.

또한, 우리는 왕과 같고 하나님께 온전함으로 예배드릴 수 있는 제사장과 같은 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체성을 아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아는 것에서 멈춘다면 절대 변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 말씀을 알고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반응할 때, 우리의 삶이 바뀌어질 것입니다.

어떤 청년이 여름을 준비하면서 수영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청년은 수영에 관해 여러 책을 통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수영의 역사부터 자유형, 평형, 접영 등 수영 방법, 자세, 호흡법 이론까지 완벽하게 공부했습니다. 책으로 공부한 후 유튜브에서 수많은 수영 영상을 보며 사람들이 수영하는 법과 강사들의 가르침을 공부했습니다. 마치 수영 전문가가 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번도 수영장에 들어가서 수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물에 들어가면 어떨까요? 이론처럼 될까요? 아무리 이론을 잘 알고 있어도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이론을 가지고 물속에 들어가 가라앉아 보기도 하고 물도 마셔보면서 물에 뜨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뜨는 법을 배우고 배우다 보면 드디어 헤엄을 칠 수 있는 단계까지 가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수영을 이론적으로 배웠다면 물속에 들어가 떠오르는 법을 배우고 헤엄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것은 물속에 들어가 믿음으로 떠오르고, 나아가 헤엄치는 경험과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지식으로만 알고 있다면 삶의 능력으로 나타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는 것에서 그쳐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물속에 들어가 한두 번 시도해 보고 포기하지는 않았습니까?

수영을 가르쳐 보니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며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운 저는 수영을 가르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장마철에 불어난 계곡물에서도 30~40m를 거침없이 수영하던 제가 서울에서 수영을 못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습니다. 안면도 바닷가에서 장로님께서 수영을 못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물속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으로 가라앉았습니다. 마치 잠수함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 매우 신기했습니다. 어떻게 아래로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발버둥을 쳐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누군가 잡아 끌어 올려주어야만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곳에서 헤엄쳐야 합니다. 물도 먹어보고 가라앉아도 보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끌어 올려지고, 도구도 사용해 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물이 너무 자연스러워지고 그곳에서 헤엄치고 수영도 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화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정체되어 있는 하나님의 더 나은 뜻들을 이뤄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그것에 관해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절 24절 말씀은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23절에 보면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라고 말씀합니다. 결국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얼굴을 거울로 보고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보았다면,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보고 그 말씀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내가 어떤 존재인가를 보여주는 것을 우리가 보았다면, 그다음은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믿는 자의 삶의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라고 아는 것과 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말하고 행동합니다라고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이것이 아는 것의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고 그리고 자녀답게 행동하기 시작할 때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거울의 예처럼 말입니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거울을 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 옆에 치약을 묻혔습니다. 치약을 오래 두면 어떻게 될까요? 하얗게 굳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카락도 잘 다듬어지지 않고 삐죽삐죽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서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거울을 보고 잘못된 것이 있다면 당연히 고쳐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 보았을 때, 삐죽하거나 흐트러진 모습이 있다면 그 상태를 보고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대로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옆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 치약이 묻었는지, 잘 닦였는지, 화장은 잘했는지 말입니다.

오늘도 여성분들은 화장을 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잘 고치고 나왔을 것입니다. 거울을 보고 고치지 않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을 통해서 우리 자신을 비춰 보았을 때 거기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이상한 일이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 거울을 보고 우리는 아멘 하고, 그 거울을 보고 옷 매무새를 고치고 다듬고, 그 모습에 비춰진 모습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에 그 말씀이 실제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반드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성경에서 보여주는 첫 번째 반응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그 말씀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 말씀을 믿기 때문에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과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하노라”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인용하여 “그러므로 내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오 하노라”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했다면,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고 선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담대하게 말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고백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단순히 감정이나 지식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입과 삶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8절, 9절, 10절에서도 이것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내게 가까워 내 입에 있고 내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내가 만일 내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 살리신 것을 내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내게 가까워 너의 입에 있느냐 내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하나님의 말씀, 그 믿음의 말씀은 우리의 입술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라고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하고 그리고 반응할 때 그 말씀을 행할 때에 오늘 능력이 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어떤 한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하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나는 연약합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사람은 잘 도와주지도 않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다.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너는 세상을 이긴 자다. 너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분보다 크시다.”

그런데 하루는 그 성도님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왜 제 삶은 변화가 없고 왜 제 삶엔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도 역사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때 깨달게 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말한 것을 너는 고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말한 것을 너는 고백하지 않기 때문이다. 너는 늘 네가 느끼는 것, 보이는 것만 말하지.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은 말하지 않는다.”

그때 이 성도님이 그것을 깨닫고 나서 그때부터 그 말씀을 반응해서 매일 아침마다 그 고백을 바꾸기를 시작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승리자로 부르셨기 때문에 나는 오늘도 승리합니다. 오늘 내 안에 살아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신 분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탁월하심과 은혜가 있다고 말씀하신 그 말씀을 그대로 제 입술에 담아 고백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제 삶은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그 말씀을 고백하는 순간부터 그 말씀은 능력이 되어 여러분의 삶에 나타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습니까? 이해하고 있습니까? 이해하고 있다면, 그 말씀에 비추어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그 말씀에서 보여주는 대로 우리의 입술에 담아 말씀대로 말하고 있는지, 결국 그 말씀에 반응하고 있는지, 또한 그 말씀에 반응하며 그 말씀대로 우리가 행하려고 하는지를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 곳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 어떤 부분에 변화가 필요하십니까? 그러면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얼마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는가,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해서 저는 얼마큼 반응하고 있는가, 다른 말로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가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냥 제 눈에 보여지고 느껴지는 대로만 말하고 그렇게 반응하고 생각하고 있는가, 한번 우리는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을 이 나타나는 현실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사실에 반응하지 않고 도리어 진리의 말씀에 반응하는 삶의 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여러분 각자의 삶과 인생 그리고 삶을 세워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그냥 아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 말고 어찌하든 그 말씀에 반응하려고 하는 그런 삶의 태도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단지 현실에 보여지고 나타나는 그것이 아니라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바를 바라보려고 하고, 그 말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실제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제 입술로 취하고 고백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 말씀을 믿는 믿음대로 한번 행동해 보시기 바랍니다. 삶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저도 살아가다 보니 그렇습니다.

목회와 일을 병행하며 삶의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는 급박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하고, 의도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다른 존재입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로서, 우리에게 흐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은혜를 경험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과 똑같이 반응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에 따라 반응하고,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고 그려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행동할 때, 우리의 삶은 말씀대로 변화될 것입니다. 지난주 말씀처럼, 우리는 상상하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되새겨야 합니다.

1차적, 2차적, 3차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눈으로 그림을 바라본다면 반드시 그 걸음을 향해 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반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단순히 이해하는 것으로만 절대 그치지 마십시오. 말씀을 반응하는 것은 말씀대로 말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떤 선택을 할 때 이왕이면 지혜로워야 합니다. 안 되는 것을 선택해놓고 그냥 믿음을 발휘해도 되지만, 힘들고 쉽지 않습니다. 이왕이면 지혜 가운데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통해 되는 것을 선택하고 거기에 믿음을 발휘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많은 경우 안 되는 것을 선택해놓고 거기에서 막 믿음을 쏟아부으려 하지만, 하나님도 하기 힘들어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이 주신 지혜, 그 탁월함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무엇을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그 지혜의 눈으로 우리가 바라보고, 하나님께서 그런 지혜를 주셔서 이 상황을 나로 하여금 바르게 분석하게 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게 하시고, 그 선택이 있었다면 거기에 이제 말씀을 믿는 그 믿음을 최대치로 발휘해서 변화시키고 어떤 결과가 나타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결론적으로 우리는 그 말씀으로 태어난 존재들이고 그 말씀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제 우리가 그 말씀에 반응하는 자리입니다. 할렐루야, 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백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번 바라보고 고백하고 그렇게 반응하는 삶을 살아간다면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이 되어서 정말 그것이 오히려 저와 여러분의 믿음의 간증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눔을 위한 질문

Q1.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Q2. 최근 말씀을 듣고 삶으로 반응했던 경험이 있다면 나눠봅시다.

 

Q3. 말씀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정체성 중, 내가 더욱 믿고 고백해야 할 진리는 무엇입니까?

 

Q5. 내가 오늘부터 말씀에 반응하며 실천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마무리

오늘 본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 자”가 아닌, “행하는 자”가 되라고 명확히 말합니다.

야고보서 1: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많은 성도들이 말씀을 압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아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말씀에 반응하고 고백하고 실천하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