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잠언 3:5~6]

5.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전심으로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이해력이나 통찰력, 즉 ‘내 명철’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신뢰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신뢰란 단순히 믿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신뢰에는 ‘의지하다’,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안전하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신뢰는 근본적으로 염려가 사라지고 마음에 안정과 평안을 주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어 ‘바타(בָּטַח)’라는 단어 역시 신뢰할 때 오는 행복감과 안도감을 표현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의 마음이 안정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 장로님은 운전을 아주 잘하시는데,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앞차와의 간격을 멀리 두지 않고 꼭 바짝 붙어서 운전하십니다. 오랫동안 여러 번 함께 차를 타 보았는데, 배우자 되신 집사님은 늘 불안해합니다. 특히 뒷자리에 타면 멀미가 심해서 늘 앞자리에 앉으시는데, 그래도 불안해서 “제발 조금 떨어져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면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30년 동안 운전하면서 사고 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나? 없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나를 믿어.”
실제로 장로님은 한 번도 사고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왜일까요?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잘해도 완벽할 수 없습니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람을 신뢰하면 불안이 남지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는 마음 깊은 곳에서 안정과 행복, 안도감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신뢰하고 계십니까?
삶의 문제와 인생의 여러 관계 속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오는 안도감과 평안, 더 나아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여기서 ‘인정하라’는 말은 히브리어 야다(יָדַע)인데, 단순히 알다라는 뜻을 넘어서 이해하다, 배우고 경험하여 알다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인격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단순히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삶 속에서 경험하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통해 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정은 저절로 될까요? 아닙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인정하라”고 한다고 해서 바로 인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장로님께서 집사님께 “내 운전 실력을 인정해 봐”라고 말씀하신다고 해봅시다. 처음부터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30년 동안 함께 차를 타면서 비록 불안한 순간도 있었지만 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았다는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안도감이 생깁니다. 인정은 이렇게 경험을 통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인정하라”는 말씀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여러 사건과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참된 ‘인정’, 곧 야다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과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되겠지요. 언제나 그분과 친밀한 교제 속에서, 삶의 문제와 환경, 그리고 살아가는 모든 자리에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응답을 경험하며, 말씀을 통해 보호와 인도하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바로 그런 경험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그분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기서 ‘지도한다’는 단어는 히브리어 야사르(יָשַׁר)인데, ‘평탄하다’, ‘곧다’, ‘바르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비유적으로는 앞에 있는 장애물을 치워서 길을 평탄하게 만드는 것을 묘사합니다.
따라서 “너의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길을 보여주신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앞길의 장애물을 제거하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바른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생의 길을 걸어가다 보면 때로는 좌로나 우로나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범사의 그를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을 곧고 평탄하게 하시며, 걸어가는 길의 장애물까지 치우셔서 끝내 올바른 길로 걷게 하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신뢰할 대상을 찾습니다. 어떤 이는 돈을 신뢰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주변 사람들을 의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 혹은 배움과 실력을 신뢰하며 살아갑니다. 심지어 “다른 건 몰라도 내 주먹은 믿는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를 신뢰하라.”
너 자신이 가진 지혜나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살아계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분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을 뜻합니다.
오늘은 성경 속의 몇 가지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는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까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올바른 길로 걷게 하시며, 앞길의 장애물들을 제거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생의 길에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걸으며, 그 길마다 장애물이 치워진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첫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잘 아시지요?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히브리서에서는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그 말씀에 순종하여 길을 떠났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 땅이 어디인지, 여정이 어떨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아브라함이 살던 고향은 부유하고 문명이 발달한 곳이었습니다. 먹고 사는 데 부족함이 없었고, 장사도 잘 되고, 병원도 있었으며, 시장에 가면 물건이 가득했습니다. 사람도 많고, 극장도 있고, 친구들도 많아 삶이 편리한 곳이었습니다. 굳이 떠날 이유가 없는 곳이었지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떠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것은 편한 환경이 싫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길은 자동차가 다니는 편리한 길이 아니라, 걸어서 가족과 짐을 이끌고 가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씀을 따라 알지 못하는 길을 떠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여정,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쳐라.” (창세기 22장)
그 말씀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자녀,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적처럼 주신 아들을 바치라니요. 아들을 주셨다가 다시 빼앗아 가시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분명 아브라함 안에도 “이게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는 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묵묵히 준비하여 그 길을 떠났습니다.
모리아 산에 올라 이삭을 제단 위에 묶고 칼을 들어 내리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제야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
그때 하나님은 번제로 드릴 수양을 예비해 두셨고, 그곳에서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라는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우리의 계산으로는 맞지 않아도, 상황이 불가능해 보여도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고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신뢰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곧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말씀은 무엇입니까? 바로 복음의 말씀 아닙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새 언약을 주신 복음의 약속, 그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유업과 약속을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그 약속을 믿고 있습니까? 그 말씀을 신뢰하며, 그 믿음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고 있습니까?
우리 삶에는 다양한 필요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치유에 관한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경제적으로 힘든 이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부요케 하시는 말씀을 믿는다면 그 믿음에 따라 재정의 원리를 붙잡고 행동해야 합니다. 관계의 문제든, 삶의 어떤 문제든, 그 상황에 합당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신뢰하며, 믿음으로 취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붙잡고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아는 것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믿었기 때문에 믿음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믿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시고 이루시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처한 현실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도착한 곳은 어디였습니까? 바로 홍해 앞 해변이었습니다. 앞에는 넓은 바다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해 오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습니다.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차라리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라며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다시는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 14:13~14)
현실만 본다면 길은 완전히 막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지팡이를 들어 바다를 향했을 때, 바람이 불어와 홍해가 갈라지고 양쪽에 물벽이 서며,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걸어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분명합니다. “내가 너희를 축복의 땅으로 인도하겠다. 그 땅은 너희의 것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백성이었고, 그 은혜를 따라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앞뒤가 꽉 막힌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앞뒤로 막힌 듯한 답답한 상황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이 있었듯, 우리에게도 약속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온 자들입니다. 이 약속 안에 들어온 우리는 약속의 자녀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은 자들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말합니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다.”
우리는 약속의 자녀로 태어났고, 그렇게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분의 작품으로서 빛을 나타내도록 이미 선택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승리의 길입니다. 반드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을 보여주는 자로 살아가도록 선택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생길에서 앞이 막히고 뒤가 막히는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분의 생명값, 곧 핏값으로 사신 바 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케 되었고, 온전케 되었으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저주에서 복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선택과 복, 신령한 은혜는 우리가 거듭나는 순간 이미 우리 안에 부어졌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앞뒤가 꽉 막혀 답답한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절망하지 마십시오. 눈을 들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바라보십시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오늘 우리의 눈앞에 홍해가 가로막혀 있고, 뒤에서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들에게 반드시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길을 걷게 하시기 위해, 친히 그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답답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여시고 피할 길을 내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고, 마음에 안도감과 안정감, 그리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며 절망과 상실감, 우울감으로 감정이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약속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길을 앞서 준비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오늘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길을 여시는지를 기대하며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인간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첫 번째로 맞닥뜨린 것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이었지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땅굴을 파고 들어가 문을 열거나, 커다란 목재로 성문을 부수거나, 공성 무기로 성벽을 공격하는 방법들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전략은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이렇습니다.
“일어나 성을 침묵하며 돌라.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제사장의 나팔 소리에 맞추어 큰 소리로 외쳐라. 그러면 성이 무너지리라.”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비상식적이고, 어리석게 보이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매일 성을 돌면서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래서 성이 무너질까? 다른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그들은 매일 순종하며 성을 돌았습니다. 처음에는 성이 견고하게만 보였지만, 날마다 도는 동안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어느 순간 그 성이 이미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나팔 소리와 함께 외친 그 함성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이미 승리자의 외침이었습니다. 결국 성은 무너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방법을 고집하지 않고, 때로는 상식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이야말로 진정한 승리의 길입니다.
여러분 앞에 견고한 성읍이 가로막혀 있습니까? 혹은 넘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장애물이 압도적으로 서 있습니까? 그렇다면 바로 그때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를 때입니다.
아무리 커 보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말씀과 기도로 그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어느 순간 그 견고한 성읍은 평지가 된 것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눈으로 보기 시작할 때입니다.
그 순간 우리는 담대하게 외칠 수 있습니다. “무너졌다!” 승리의 함성을 외칠 때, 실제로 성읍은 무너져 내리고 우리는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방법,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네 번째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인생의 어떤 위기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위기와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다니엘서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했지요.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을 세우고 모든 백성에게 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왕의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분노한 왕은 말합니다. “누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겠느냐?” 그때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서도 능히 건져내실 것이요,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 않을 줄 아옵소서.” (단 3:17–18)
그들의 신앙은 위기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건져내실 것을 믿었고,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끝까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불꽃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하셨습니다. 머리카락 하나, 눈썹 하나 타지 않고 살아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권력이나 세상의 힘을 붙잡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참된 믿음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 말씀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할렐루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모든 일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붙드시고 승리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사람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으로 세움 받았지만, 현실 속에서는 여전히 사울이 왕으로 있었습니다. 사울은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려 했고, 다윗은 수없이 도망 다녔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요.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사울을 제거하고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해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에게 손을 댈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힘이나 때를 앞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내 힘과 지혜로 앞서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기다림보다 앞서 행하려 하지만,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는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다윗이 인생을 돌아보며 고백한 시편 23편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아멘.
다윗은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셔서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에, 우리에겐 부족함이 없습니다.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며,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영원히 함께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하면, 주께서 우리의 길을 지도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받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지, 여전히 내 명철을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믿음으로 고백하고 결단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눔 질문

1. 최근, 내 판단을 의지했다가 불안이 커졌던 순간과 하나님을 신뢰했더니 마음에 안도·평안이 왔던 순간을 각각 한 가지씩 나눠보세요. 무엇이 달랐나요?
2.삶에서 하나님을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알게 된 구체적 사건이 있었나요? 그 경험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어떻게 깊게 했나요? 이번 주 ‘하나님 인정’ 실천 1가지를 정해봅시다.
3.지금 이해는 안 되지만 순종해야 한다고 마음에 주시는 말씀이 있나요? 순종을 막는 두려움/장애물은 무엇이며, 공동체가 서로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4.당신의 삶에서 ‘홍해’(막힘), ‘여리고’(난공불락), ‘풀무불’(위기)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상황에서 포기해야 할 인간적 방법 1가지와 붙들어야 할 하나님의 약속 1가지를 나눠보세요.
5.요즘 ‘기다림’이 필요한 영역은 무엇인가요? 조급함이 불러온 실수나 유혹은 무엇이었나요? 기다림 동안 지킬 신앙의 루틴(말씀/기도/감사/섬김 중 최소 1가지)을 이번 주 적용 계획으로 서로 약속해 봅시다.

마무리

성경은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아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삶 속에서 그분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방법과 때를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평탄하게 하시고 앞에 놓인 장애물을 제거하시며, 참된 평안과 안도감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의 순종, 이스라엘의 홍해 체험, 여리고 성 앞에서의 믿음, 다니엘의 세 친구의 담대함, 다윗의 기다림은 모두 하나님을 신뢰한 삶의 예시입니다. 우리도 인생길에서 막힌 현실과 위기 앞에 설 수 있지만, 약속의 자녀 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신뢰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 평생에 함께하며, 마침내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