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사사기 7:1~8]
1.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변화와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본질을 생각해 보면 첫 번째는 변화이고, 두 번째는 성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라는 단어는 헬라어 메타몰포호(μεταμορφόω) 에서 왔습니다. 이는 “다른 형상으로 변하다, 변형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봄이 되면 꽃 주변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호랑나비, 노란 나비, 하얀 나비 등 수많은 종류의 나비가 꽃을 향해 날아드는 모습은 정말 화려하고 예쁘지요. 그러나 그 시작은 어떻습니까? 바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애벌레입니다. 애벌레는 결코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징그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전혀 다른 존재인 나비로 탈바꿈합니다. 땅을 기어 다니던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애벌레를 볼 때 우리는 그 안에서 화려한 나비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과정을 거치면, 그 애벌레는 결국 전혀 다른 존재, 곧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로 변화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변화의 본질입니다.
변화란 무엇입니까?
변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첫 번째 변화는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믿음으로 그 은혜를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변화됩니다.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것, 곧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바뀌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옆에 있는 분에게 축복해 보시겠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다.” 거듭났다는 말은 곧 다시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태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일어난 첫 번째 변화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나는 영입니다. 혼(생각)을 가지고 육체 안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진짜 본질은 영입니다. 지금 우리의 겉모습은 세월이 흘러 주름이 생기고 늙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나라에서 우리는 가장 젊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언제나 변치 않고 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변화는 단순한 외적 변화가 아니라 본질, 본성의 변화입니다. 본질상 죄와 죽음, 사망과 저주 아래에 있던 우리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감당하심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분의 생명, 빛, 의,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우리가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애벌레가 나비로 바뀌듯, 전혀 다른 존재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첫 번째 변화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이며,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분이 바뀌고 삶의 모든 것이 새로워집니다. 왜냐하면 진짜 나는 누구입니까? 바로 영입니다. 우리는 혼을 가지고 육체 안에 살고 있지만, 본질적인 나는 영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는 전혀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이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 세탁되어 깨끗해진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형태로 변화된 것, 그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의 첫 번째 변화는 이렇게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선한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우리는 그 은혜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받아들였을 뿐, 그것은 철저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은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두 번째 변화를 말씀합니다. “변화하고 성장하라. 성장하고 변화하라.” 첫 번째 변화가 영적인 문제, 곧 우리의 영이 새로워지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변화는 바로 혼적인 영역, 곧 마음과 생각, 그리고 삶 전체의 변화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본질은 곧 변화와 성장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과제는 무엇입니까? 바로 마음과 생각, 혼적인 영역의 변화입니다. 이 변화가 결국은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이것을 성경은 성장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변화와 성장은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는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여기서 “그가 만드신 바라”라는 표현은 헬라어 포이에마로, 하나님의 작품, 걸작품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최고의 작품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겉모습의 주름이나 흰머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속사람, 곧 본질이 바로 걸작품입니다. 속사람이 하나님의 작품이기에 겉사람도 존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작품으로 지으신 목적은 감추어 두기 위함이 아닙니다. 작품은 드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보여지고, 자랑되어지고, 많은 사람이 보고 감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걸작품으로 드러나도록 지음 받은 존재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빛은 말 아래 두는 것이 아니라 등경 위에 두어야 하고, 산 위에 두어야 모든 사람에게 비출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지음받아, 하나님께서 드러내시고자 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일을 세상 속에서 나타내는 존재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변화는 거듭남에서 시작되지만, 그다음 단계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하고 아름다운 영향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성장입니다. 옆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축복해 보십시오. “당신의 삶을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이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과 생각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로 우리 안에 놀라운 변화를 시작하셨지만, 만일 우리가 여전히 옛 사람의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타내고자 하시는 놀라운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서 열매로 드러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 말씀 속 기드온의 이야기를 살펴보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변화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은혜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입니다. 당시 시대적 배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7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미디안 족속과 아말렉 족속은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침략하며 농작물을 빼앗아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수확을 하면 곧바로 약탈을 당했습니다.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계속 빼앗기니 그들의 삶은 극심한 고통과 어려움 속에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구원을 간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한 사사를 세우셨는데, 그가 바로 기드온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났을 때, 그는 특별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밀을 수확한 뒤 타작하는 소리를 숨기기 위해 포도주 틀 속에 숨어 몰래 타작을 하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사사기 6장 12절)
여러분, 이 말씀을 받기에는 기드온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디안 사람들에게 곡식을 빼앗길까 두려워, 포도주 틀 속에 숨어서 몰래 미를 타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리조차 들릴까 봐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반응하셨겠습니까? 기드온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지파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이니이다.” (사사기 6장 15절)
기드온은 자신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환경을 보아도, 가정을 보아도, 자신은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니 “큰 용사”라는 말이 도무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정체성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아니다. 너는 큰 용사다. 내가 너와 함께한다.”
우리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연약하고 초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우리가 변화되고 성장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마음과 생각의 변화, 곧 정체성의 회복입니다. 그리스도를 알기 전 우리의 모습은 연약하고 부족하며 초라했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상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고, 죄와 사망과 어둠에 사로잡혀 영원한 심판 아래 있던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놀라운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값 곧 그의 피와 목숨값을 치르시고 우리를 사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피로 모든 어둠의 권세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과 의로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연약하고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성경이 말씀하는 큰 용사입니다. 고백해 봅시다.
“나는 큰 용사입니다. 비록 나는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거듭난 자에게 주어진 은혜입니다. 그것은 곧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선언합니다.
“너는 약한 자가 아니라, 강한 자다. 오늘 하나님이 너와 함께하신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곧바로 믿지 못했기에 여러 번 시험하며 확증을 구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하나님의 약속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시 한번 마음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육신적으로 연약하고 부족하며 실패와 한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자를 택하셔서 강하게 하시고, 지혜롭게 하시며, 함께하시고, 그분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 곧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옆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해 보십시오.
“정체성을 회복하십시오.”
성경은 거듭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인지 분명히 말씀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이 말씀을 묵상하고, 붙잡고, 생각하며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여기에서부터 변화와 성장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신 첫 번째 일도 그의 정체성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며 포도주 틀 속에서 몰래 타작을 하고 있었지요.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참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도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이스라엘을 통해 미디안과의 전쟁을 준비시키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늘 압제와 억압 속에서 침략당하고 빼앗기며 살아가던 삶에서 벗어나, 자유를 향한 변화의 시작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 전환점이 오늘 본문 말씀 속에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위해 모였고, 그 수는 무려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서 세 가지 중요한 교훈을 보여주십니다. 만약 3만 2천 명이 그대로 전쟁에 나가 승리한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자기들의 힘과 숫자 덕분이라 여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 군사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첫 번째로 다루신 것은 바로 두려움이었습니다. 사사기 7장 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들은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그 말씀에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남은 자는 1만 명이었습니다.
결국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두려움을 가진 채로는 전쟁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변화와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두려움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힘든 상황이 변화되기를,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마음속에는 갈망이 분명히 있지만, 그 길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두려움입니다.
얼마 전 교제를 나누던 중 한 성도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대순진리회에 푹 빠져 몇십 년을 살아오셨는데,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으셨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벗어나고 싶고 변화를 원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벗어나면 무슨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집안에 우환이 생기지 않을까, 삶이 망가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늘 가로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약사로서 약국을 운영하며 누구보다 성실히 살아가셨지만, 변화 앞에서는 여전히 두려움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복음의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혜는 반드시 사람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변화 자체를 두려워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과의 전쟁을 앞두었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내가 행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해 먼저 두려워 떠는 자들을 돌려보내셨습니다. 그 결과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 1만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작품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통해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도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4장 1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할렐루야!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어떤 사랑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나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그 사랑을 기억할 때 우리 마음 속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성경이 말씀하듯,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여러분, 인생 가운데 무엇을 붙잡아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지금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늘 기억하십시오.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옆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축복해 보십시오.
“당신은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할렐루야! 이 은혜가 지금 저와 여러분 가운데 역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할 때, 모든 두려움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직도 사람이 많다. 더 정리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을 물가로 내려가게 하시고, 물을 마시는 모습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목이 마른 군사들은 물가에 이르자 저마다 물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얼굴을 물에 대고 개처럼 핥듯 마셨고, 어떤 이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손으로 물을 움켜 떠서 입에 대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무릎 꿇고 물에 입을 대는 자들은 따로 두고, 손으로 움켜 물을 마시는 자들을 따로 분류하라.” 그 결과 손으로 물을 떠 마신 사람은 단 300명이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당시 맞서 싸워야 할 미디안 군대의 수는 무려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미 군사의 수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오히려 사람을 더 줄이신 것입니다. 두려워 떠는 자들을 먼저 떠나게 하셨고, 이번에는 지혜롭게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는 자들을 제외하신 것이지요.
전쟁을 앞둔 군사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기를 내려놓지 않고, 주변을 경계하며 상황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손으로 물을 떠 마신 자들은 바로 그런 태도를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지혜로운 자들을 남기시고, 어리석은 자들을 정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함께 큰일을 감당하려 할 때는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기드온의 군대를 그렇게 정리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된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반드시 제거해야 합니다. 어리석음이란 무엇입니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으며, “뭐, 되겠지. 때 되면 알아서 되겠지.”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태도로는 결코 안 됩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의 큰 틀은 주관하시지만, 우리의 인생을 경영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 땅을 다스리라 맡기신 것처럼, 오늘도 우리의 삶을 관리하고 선택하는 책임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계산하고 분석하며 상황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전쟁을 앞둔 군사가 전략을 세우듯이, 우리의 삶도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 하시니까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일을 친히 행하시되, 동시에 우리를 통해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지혜로운 자로 서야 합니다. 이것이 변화된 삶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마음과 생각이 변화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막연하게, 혹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분별하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은혜의 자리에 서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을 거쳐 하나님께서 모든 정리를 마치신 후, 결국 남은 자는 몇 명이었습니까? 바로 300명이었습니다. 이제 이 300명을 데리고 미디안의 대군과 맞서 싸우게 됩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아시겠습니까?
당시 미디안 군대의 수는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군대 규모로 비교해도 어마어마한 대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대군과 싸우게 하시면서 겨우 300명만 남기셨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까무러칠 일입니다. 무서워 도망쳐야 할 상황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리하시고 남기신 이 300명은 단순한 300명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믿음으로 준비된 자들, 승리의 은혜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나팔을 준비하라. 항아리를 준비하고 그 안에 횃불을 넣어라.”
그래서 군사들은 횃불을 항아리 속에 감추고, 손에는 나팔을 들고 미디안 진영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려라. 그리고 횃불을 들어 올려라.”
할렐루야! 그들이 그대로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미디안의 대군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혼비백산하며, 서로를 적으로 착각해 스스로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항아리는 질그릇을 상징합니다. 질그릇은 연약한 우리 자신을 의미하고, 그 안에 감추어진 횃불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과 영광을 상징합니다. 질그릇이 깨어질 때, 그 안에 있는 횃불 곧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 모든 어둠을 몰아내고 승리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혼적인 영역, 곧 마음과 생각이 말씀을 통해 깨어질 때, 우리 안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생명과 빛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열매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또한 그들은 항아리를 깨뜨리며 동시에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며, 믿음으로 선포해야 함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사사기 7장 20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니”
그 순간 미디안 진영은 완전히 혼란에 빠져 서로를 치며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전쟁은 그렇게 하나님의 손에 의해 단번에 끝이 났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아멘! 결국 이것이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 안에 담긴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가진 그릇이 깨어지고 변화될 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고 빛나는 능력이 나타나고,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이 질그릇이 깨뜨려지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는 것뿐입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묵상하고 고백하며, 믿음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옆 사람을 바라보며 이렇게 권면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말씀을 믿음으로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입술로 선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은 이미 우리 안에 있지만, 그것을 가리고 있는 것이 우리의 질그릇, 곧 변화되지 않은 사고방식과 견고한 생각의 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깨지지 않으면,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흘러나오지 못합니다. 결국 변화의 열매도 맺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반드시 깨뜨려야 합니다. 한 손에 나팔을 들고, 한 손에 항아리를 깨뜨릴 때, 그 안에 있던 횃불이 드러나듯이, 우리도 말씀을 선포하고 외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사사기 말씀처럼, 그들이 외쳤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오늘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선포하며, 믿음으로 외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드디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압제에서 해방되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스스로 약하다고 여겼던 기드온이 어떻게 참된 강한 용사로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기드온 자신의 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임하신 하나님의 부르심과 능력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약한 자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모든 것을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생명,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따라 두려움을 정리하고, 분별력 있는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믿음으로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실제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작품으로 부르셨고, 우리를 통해 이 세상 속에 빛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곧 선한 영향력이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를 붙잡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한 주간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변화되고 성장하며, 그분의 뜻을 드러내는 삶이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눔 질문
1)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실 때 “큰 용사”라 말씀하신다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2) 최근 내 삶 속에서 두려움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지 못한 경험은 무엇입니까?
3) 내가 분별 없이, 습관적으로 행동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말씀 안에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4) 질그릇 같은 내 연약함 속에서도 드러나야 할 “하나님의 보배”는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5) 이번 주에 내가 실천할 작은 변화는 무엇입니까?
적용과 기도 [새로운 피조물 고백기도집 활용]
적용
- 하나님이 나를 “큰 용사”라 부르신 정체성을 붙잡고 하루를 시작합시다.
- 작은 두려움 하나라도 믿음으로 끊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봅시다.
- 말씀을 묵상하고 선포하며,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드러내는 삶을 삽시다.
기도
- 나의 연약함을 넘어, 하나님의 작품으로서 살아가게 하소서.
- 두려움을 버리고 담대하게 변화의 길을 걷게 하소서.
- 내 삶을 통해 복음의 선한 영향력이 드러나게 하소서.